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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진화론 150주년-한국 기독교와 진화론의 공존의 아이러니


올해는 찰스다윈의 탄생200주년이자 종의기원 발간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덕분에 즘 미국에서는 다윈과 진화론에 대한 여러 행사와 연구를 통한 논의가 활발하다.
각 신문사와 NPR 같은 공영라디오에서는 이에 관한 특집을 내보내고 있고

History of Science 가 유명한 이곳 University of Oklahoma 에서도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http://www.ou.edu/darwin/Site/Home.html

종교적으로 상당한 수구성을 보이고 있는 이 미국땅에서는 다윈은 여전히 큰 논쟁거리이다. 실제로 각 교육청마다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 여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는 사례가 흔하고,
진화론을 가르칠때면 최소한 학생, 혹은 부모님의 서명까지 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기독교 계열 사립학교에서는 아예 꿈도 못꾸는 일이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이 이론에 대한 논쟁이 적은 한국에서는 그와 관련된 소식이나 행사도 별로 없는듯 하다.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차피 다른 나라 사람과 그 이론에 관한거라.. 치부할 수 있을 거고..
또 어떤면에서는 뭐 그 당연한걸 갖고 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한국사회의 또다른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쓴웃음이 나온다.

소위말하는 한국적 사회진화론의 현상이 바로

수구적 기독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개화기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 등은 미국에서 "선진"교육을 받았으며 모두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문명으로 개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중 종교와 신교육을 들었다. (그들의 정치 사상 등등 행적에 대한 것은 이곳에서 논할 바는 아닌것 같다)

이는 일본 메이지 유신이나 여타의 소위 말하는 전근대 지역에서 근대화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엄격히 말하면 근대화가 이식되는 과정) 을 통해서 신 엘리트들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이데올로기의 일종이었다.

결국 뒤떨어진 우리를 개조시키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저 우월한 서구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단선적 사회 진화론 (스펜서로 부터 시작된)의 아주 극명한 형태가 자리잡게 된다.

그 와중에 우리는 소위 말하는 새로운 종교 ("성공한" 자본주의의 근간이 된다는 개신교)를 받아들여 우리의 "덜떨어진" 미신을 타파하고 합리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의 바탕을 깔게 된다.

그와 동시에 온갖 서양의 지식들이 "우월한 것" 의 지위를 유지한채 한국 사회에 이식 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그 기독교와 진화론이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게 된다.

이는 마치 한국 사회에서 이미 1948년에 서구 여느 나라 만큼이나 진보적인 형태의 제도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동시에 아주 폭압적이며 최첨단으로 현대화된 감시기구가 공존하는 것도 설명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선진국" 들이 하던건 다 갖고 왔으니 말이다.


즉 근대화된 교육 체계에서 진화론은 당연히 선진적은 것으로 가르쳐지기 시작했으며

종교는 종교대로 끝도 없이 번창해 간다.

그래서 아주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수구적 기독교도 진화론에 대해서는 (그들이 진보적이고 "정상적" 인 정치에 대해서 하는 것만큼의) 땡깡을 부리지 않는다.


한국의 사회진화론은 사실 그 어떤 사회진화론 (독일에서 있었던 인간개조, 즉 우성혈통만 남기는 실험) 에도 뒤쳐지지 않는 강력한 기제로 발전해왔다.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는 삼성전자의 광고를 보면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기업이라고 그러니까 그 국가대표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나라의 단면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듯이

잘 살면, 1등하면 된다 그래서 그 곳에서 적자가 되어 생존하자라는 논리는 박정희의 잔인하도록 폭력적인 정신개조운동의 유산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는 그 진화론이 자신들이 안믿으면 지옥간다고
사방에서 공갈협박을 쳐대는 그 종교의 원칙에 어긋나든 말든 상관 않고, 철저하게 그 권력의 입맛에 맞게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나 해대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 150주년.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를 차치하고..
그것이 가져다준 지식과 과학, 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접근의 변화는 어쨌든 대단했으며,

우리는 그 진화론의 또다른 산물이 남긴 사회진화론의 폭력을 감내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이제. 그 사회진화론이 정말 끝나야 할 때가 되었는데...

세상은 늘 반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