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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게

컵케잌을 둘러싼 소비의 양극화


아기가 나온지 한달이 훌쩍 지났다. 뜬눈으로 지샌밤의 피로와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가볍게 눌러버리는 귀여운 짓을 보며 부지불식간의 한달이 지난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좀 외출도 해야겠다 싶어 이곳저곳을 다시 돌아다닌다. 임신성당뇨로 고생했던 와이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자 몇번 들러봤던 컵케잌 동네가게로 갔다. SaraSara.

살구 컵케잌
 
모든게 하얀색으로 꾸며진 이곳은 마치 사진 스튜디오에 온듯한 느낌을 주고, 갓 구워낸 컵케잌들일 지속적으로 진열된다. 각종 과일과 천연향이 입혀진 크림과 빵 덕분에 꽤나 인기가 많은 듯 하다. 나같이 단거 싫어하는 사람도 한 반개정도는 먹을 수 있는 것 보면 (참고로 다른 건 한입먹으면 끝이다) 별로 달지도 않다는 것이겠지 싶다.

사실 이 가게에 대해서는 다른 어느것도 묻거나 알아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달고 맛나고 이쁜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쓱 들러 한 두개 먹는 그런 느낌이라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동네가게의 성격과 맞지는 않는 것 같다는 나만의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에 기반한 소심한 저항감.



이곳에도 커피가 있다. 딱 한가지 커피를 파는데 꽤 진한 맛이 컵케잌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가격도 뭐 그리 비싸지 않은 1불 50이다. 그렇게 먹고 담소하고.. 이번에는 아기 사진도 좀 찍고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월마트에 막 들어서면 보통 베이커리가 있다. 그리고 그 앞 진열대에는 플라스틱 통에 6개 8개씩 들어있는 컵케잌 무리들이 있다. 보통 2-3불 정도 하는 이 컵케잌들은, 단거를 정말 싫어하는 내게는 보기만해도 턱이 돌아갈 것 같은 색깔의 설탕 더미가 올려져있다.

그런데 이 사라사라의 컵케잌은 하나에 3불 25다. 물론 조금 크긴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월마트의 그것보다는 5배 이상 비싼 가격인 것이다.

침침한 조명, 얼기설기 철빔으로 엮어진 건물, 찢어진 난닝구를 걸친 사람들, 상품 물려서 돈 돌려 받아가는 소비자 서비스에 사람들이 물러낸 고기와 우유와 계란이 그냥 쌓여있는 곳. 월마트에서 어릴적부터 싸구려 상품에 의해 길들여진 설탕덩어리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고자 먹는 컵케잌은 8개에 3불.

오클라호마시티 NE 9번가의 간지나는 샵과 레스토랑이 있는 지역을 알 수 있는 "정보력"을 가진 사람들은 순백의 인테리어속에서 3불25의 과일 컵케잌을 먹는다.
 

경우도 없고 인종차별도 심하고 살도 심하게 쪘고 무식한 트럭을 타고 다니며 후까시나 붕붕 넣는 월마트의 사람들에게 진저리를 내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러다가 바로 그런생각을 한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식으로 길들여졌을까.

부르디외는 회사 보스와 직원간의 "취향"에 대한 얘기를 함으로서 자본주의 사회가 취향의 획일화를 만들었고, 또한 사람들에게 그 취향의 소비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불만욕구를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는 (늘 그렇지만 이런 정리는 폭력적 단순화다. 죄송) 논의를 한다.

즉 상품시장을 비롯한 다양한 층위의 자본주의 시장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기 형성된 획일화된 취향들을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중 월마트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월마트에는 없는게 없다. 하지만 월마트에는 좋은건 없다. 우리회사 돈많은 사장님이 쓰시는 저 물건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이 물건을 나도 월마트에서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내껀 몇달쓰면 고장날 것이다.

취향의 획일화는 "쿨~해보이는" 상징자본 ("저건 좀 있어보이는데" 라는 무형의 자본)에 의해서 형성되었고, 이 취향은 생산과 소비의 자본에 의해서 "충족되는 것 처럼 느끼게" 한다. (일종의 물신화 fetishism)  

이러한 자본주의 시장과 물신화 그리고 취향의 형성과정 등을 통해서 컵케잌은 두가지의 양극화된 소비를 형성한다. 모양만 비슷한, 전혀 다른 재료의 전혀 다른 상점의 아우라의 전혀다른 맛을 가진 두가지 컵케잌이 사람들의 손에 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값 싼 쪽은 값 비싼 쪽 보다 수백 수천배의 사람들의 공간이 된다. 

동네가게의 문제는 참 여러가지의 방향에서 풀어가야한다. 자본주의가 구조화한 취향. 자본주의의 배급시장.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의식. 가격의 합리화에 대한 문제. 이미 형성된 "입맛"에 대한 각성 (계몽?). 등등등.. 이쁘고 간지난다고 해결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개도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계급은 밥그릇으로 나뉜다고.. 80년대의 급진적 시인이 외쳤지만..

이곳에선 컵케잌으로 나뉘었다. 자신들이 나뉘어진지도 모른채.

..

가게에 뚱뚱한 세 모녀가 들어와 컵케잌을 주문한다. 그리고 소다를 시킨다. 콜라를 마신다. 취향이 다양해서 다행이다고 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컵케잌에 콜라라.. 또 생각만해도 턱이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