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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쫌 나아짐의 한계


조금씩 나아지면 좋다. 나아지니까 좋다.

그러니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쪽으로 가자.

 

그렇게 불붙었던 2002년의 개혁깃발이 이명박이라는 참 되도 않는 깡패보스 같은 무식한 불도져에 밀리고 있다.

 

그래서.

 

슬픈가?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슬픔은 그 조금 나아짐에 대한 차악의 선택을 취했던 스스로에 대한 슬픔일 것이라는게 합당한 말이리라.

 

금전에 관한 문제가 터졌다. 그리고 마치 그 문제가 조금 더 나아짐을 취한 사람들에게 굉장한 타격처럼 두르러지고 있는 시점이다.

표면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더 나아짐 이란 담론이 갖고 있는 한계일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사회 구조가 (크게는 전 세계적인 체제가) 작동하는 원리가 존재하는 공간 속에서 그 원리 자체를 인정하는 가운데 조금 더 나아짐을 추구하는 한

필연적으로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메카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아지더라도 작동되어야 하는 원리가 여전히 존재하며, 그 근간을 유지시켜주는 자본과 권력의 유기적 기능이 존재하는 공간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청결하게 유지 되길 기대한다는 건지.

 

그 의구심은 이미 2002년에도 명확하게 예측되는 뻔함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과정에 있어서의 불공정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조금더 나아짐을 기대한 이들에게 자가당착은 아니었을까.

 

노무현이 된 다음엔 조금 더 나은 것을 기대했을지 안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  작동 원리속에서 그것을 기대했다는 것의 순진성에 대한 딱한 생각. 거기에 더해 그 반대급부가 가져오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왜 이딴일이 벌어지지라고 분노하는 순진성에 대한 한층더한 딱함.

 

그 원리를 깨지 않고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는 그 "보수성"의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고 깨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기 바라는 마음.

 

그런것들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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