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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거슬리는 언어들..

아주 오랜만의 포스팅. 남들의 달가움이 달갑지 않아 간만에 끄적여본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부족에게 한글을 "수출" 한 자긍심이 대단한 것 같다. 오늘은 급기야 한국 훈민정음학회에서 현지에 "한글성지"를 세운다는 기사가 올라온다. 보수언론은 물론 중도성향 언론들 조차 살짝 흥분한 어조로 "우리문화상품"의 자랑스러움을 설파한다.

자세한 과정을 모르니 한글 수출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시비를 걸지는 않으려한다. 혹시 그들이 정말 원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예측컨데.. 사명감 넘치고 문화적 자부심 (그것은 바로 문화적 패배의식의 다른 면이지만 말이다..) 에 부풀어오른 한글 학자들 혹은 "개발론자" 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여전히 한국 뿐만아니라 국제적인 구호, 봉사단체들이 갖고 있는 19세기적인 단선적 진화론을 여기서 거론할 필요는 없겠다..) 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으리라.

어쨌든, 그 한글 보급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관련 단체, 정부, 그리고 언론들이 보이는 자세들이 아주 초보적 형태의 순진한 제국주의적 양상을 보여주고있어 참 거슬린다. 차음을 하는 문자 자체가 사용되는 것, 특히 한글 처럼 임의적인 조합체계인 알파벳 형태의 문자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 문화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한국사회에서 불문률의 도덕이 되어버린 "우리뿌리"를 강조하는 순간 그것은 아주 친절한 형태의 문화제국주의적인 측면을 만들어낸다.

문자가 생성되는 과정에서의 문화적 맥락을 임의적으로 조합의 형태를 받아들인 다른 문화지역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단순한 정보 공유의 문제가 아니라 "맥락의 강요"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알파벳 형태의 임의적 조합문자가 서구 근대성에 큰 영향을 미쳤고, 결국 그런 서구의 합리적 근대성이 전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일방적 서구근대성 논리에 대한 충실한 화답이 되는 것이다.

사실 그들에게 문자가 정말 필요했다면, 그들은 한글의 표음 표기 원리등만을 전해주고, 그 이후의 언어 발달은 그들의 문화적 맥락에 맞게 "내버려두는" 것이 "서구 근대역사" 보다 훨씬 긴 "인류 역사"적 측면에서 순리가 아닐까.
인도 유럽 어족이 그 광범위한 땅에 퍼져나가면서 비슷하지만 아주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었듯, 한글이라는 문자체계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화적 맥락에 맞는 변화를 일부러라도 보장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미 테크놀러지가 발달하고 소통의 무제한 시대에.. 나의 이런 생각도 다분히 유토피아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일부러라도 열심히 "한글의 뿌리"를 소개하고 알리고 교육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섬뜩한 개발주의를 보는 것 같아...
거슬린다.

인터뷰중 "우리도 한국처럼 발전된 나라를 만들고 싶어용!!" 이라는 내용을 자랑스러이 알리는 신문기사들을 보며..

동경에 도착한 젊은 지식인이 우리 조국도 일본처럼 발전된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열심히 공부하여 조선총독부에 들어가 열심히 "근대화 개발 사업"에 뛰어든.. "자랑스런" 조선청년을 보는거 같아..

또 거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