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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자유화? 자유가 그렇게 좋아?

한국사람뿐만 아니라, 아마  인류에게 꽤나 보편적으로 환영받는 단어가 "자유"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물론 "자유"라는 개념 조차 존재하지 않는 여러가지 언어체계와 문화체계가 지구상에 존재 할 것임은 분명하다. (누군가 연구해놓았겠지만, 확인해보긴 좀 귀찮다)

자유라는 말은 일상으로부터 거시적인 정치틀에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지만, "자유의 반대말은 구속 억압 혹은 방종" 정도의 초딩수준의 이분법적 정의가 별 고민없이 사회적으로 의미화 되어온게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화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 사용한다. 물론 비단 한국 사회뿐만이 아니다.
그말은 인간 사회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억압했는지에 대한 역설로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민권-인권에 관련된 여러가지들이, 무수한 "자유화"를 통해서 지금의 이 수준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자유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를 속박하는 쇠사슬을 풀어내는' 자유화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참으로 많이 존재한다.

소위 말하는 "돈의 흐름"의 자유화는 그 자유화가 대상으로 하는 집단의 규모나, 본질적 특성에 대한 특화된 의미설정 작업을 생략한채,

사전적의미의 "자유"에 슬쩍 발을 담근채 그 의미의 긍정성을 한껏 향유한다.

한국 사회에서 온갖 억압 (제도적 억압과 전근대적인 문화적 억압 - 물론 이 문화적 억압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은 분명히 많다. 억압과 자유를 결정짓는 것은 어떤 절대선의 가치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이 횡행하던 역사를 배경으로 할때, "자유"의 의미는 베르사이유 감옥을 습격하던 프랑스 민중들이 갖고 있던 자유에 대한 열망에 못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만큼, "자유화"라는 단어는 기본의 "선"을 듬뿍 담은채 이 사회에서 유통된다.

하지만, 이것이 "돈의 흐름의 자유" 로 형상화 될때, 이 한단어는 두가지 의미로 작용할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이 자유는 필연적으로 서로를 구속/구축하는 갈등의 존재로 되는 것이다.

즉 돈의 흐름의 자유는 인간 본성의 자유를 필연적으로 억압할 수 밖에 없는, "물신화의 자유화"를 이뤄낸다는 것을 자본주의의 역사가 설명해주고 있다.


"자유화" "자율화" 시켜야 한다고 울부짖는다. 요즘 그런 사람들은 소위말해 "없는 사람" 이 아니다.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왜 우리에게 더 가질 기회를 박탈하느냐" 고 분노한다.
그 사람들은 그래서 숭고한 "자유"의 의미를 자신들의 자본확장을 위해 손쉽게 차용한다. 의미에 대한 명확한 전달 책임이 있는 대중매체들에서 그런 것들에 대해 무지한 동시에 침묵하는 사이에, 언어는 사회 현상 그 자체를 왜곡해버리는 것이다.

지금 보수 정치권에서 그리고 시장만능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부동산 값의 뻥튀기만이 살길인듯 목메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자유"는 우리가 초등학교때 배운 자유의 타락한 형태인 "방종"을 닮아가고 있다.

의미를 명확히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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