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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세가지 불유쾌한 이야기 1 - 영어..영어..영어.

영어를 쓰는 나라에 와서 영어로 공부를 하고, 때론 영어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낸 시간이 벌써 5년이 넘어버렸다.

난, 아직도 영어때문에 스트레스야...라는 말과 생각을 달고 다닌다. 비단 그런 생각뿐만아니라, 내가 영어로 글을 쓰거나 아이들을 가르칠때, 내 생각과 지식의 얼만큼이 반영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때면, 매우 절망스러워진다.

미국사람인 지도교수는, 한국이 학교에 남기가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넌 궁극적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누누히 말한다.
실험 결과나 공식을 나열하는 공부가 아닌 논박하고 추론하는 학문을 하는 나에게 있어서, 역사와 사상을 논해야 하는 나에게 있어서 모국어가 아닌 다른나라 말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손실" 이기 때문이란다.

언어는, 단순히 기능적으로 통번역이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모든 것들이 반영된 상징형태이며 또한 그 자체가 권력이기도 한 복잡미묘한 체계이기 때문에, 머리와 몸이 그 언어의 체계를 기반하고 있는 사람은 그 언어 구조 자체에도 규정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국어 베이스가 단단하지 않은채, 어린시절 다른 언어와 혼합된 사람들에게서 인문학적 깊이 같은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기도 하다.

실제로 비교적 어린나이에 조기유학을 온 아이들을 볼때면 느끼는 것은 두 언어 모두의 불완전성이다. 그것은 그 아이의 단지 눈에 보이는 언어적 어눌함을 가져다 주는 것 뿐만아니라, 사유체계의 부조화를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다.

..
그러든 저러든.. 난 몇년을 영어를 달고 살았는데도, 아이들을 가르칠라고 하면 무지무지 긴장되고 실수를 남발한다.
실수는, 그래 이해해 줄 수 있다손 치자.

가장 큰 문제는, 영어로 아이들을 가르칠때면, 나의 설명이 아주 단순 명료해 진다는 것이다. 내가 수학선생이라면 단순 명료한게 좋을 수 도 있을지 모르겠다. (뭐 그것도 동의할 순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많은 비판적 사유와 역사적 추론 철학적 관조가 필요한 사회과학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이 단순 명료함은 치명적이고, 범죄가 될 수도 있다.
난.. 이것을 어찌 극복하나 고민을 한다.

근데.. 지금 한국에서는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난리법석이다. 가르친다는게 아니라 협박을 한다. 못하면 방법시켜버리겠다고 협박을 한다.

언어학적 문제때문이라도 반대를 하고, 또한.. 그 무모함때문에도 반대를 한다.
뇌는 삽으로 파서 다듬을 수 있는 토목구조물이 아니라는 것 쯤은 이해를 해야 하지 않을까. 범죄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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