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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날저런날

인문 지식인: 열한 개의 테제

미국의 Pragmatism 철학자 리차드 로티 (Richard Rorty)의 철학 에세이 모음집인 Philosophy and Social Hope 라는 책을 우연찮게 보게되었다.  사실, pragmatism 에 대해서 좌파에서나 우파에서나 여러가지 견해들이 있어와서 궁금하던 차에 읽어보게되었다.

그런데 이 책 중간에 짧은 한 챕터가 들어있는데, 그것이 "인문 지식인: 열한개의 테제" 라는 챕터이다. 이건 마치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 의 패러디와 같은 분량으로 되어있다. 짧게 각 테제의 주해를 달아놓았다. 일면 재밌기도 하고, 일면 동의가 되기도 하고, 일면 "그렇게 살아도 되는 구나" 라는 안도가 되기도 하고, 일면 뜨끔하기도 한 테제들을 요약 소개해 보고자 한다. (원문에 대체로 구애받지 않도록 했음을 참조 바람..그리고 너무 미국에 국한된 일부는 생략)

인문학이 위기를 넘어 사멸로 들어서고 있는 학문계의 한편과 상업적 인문학이 각종 책과 강연으로 부를 축적하는 양극화의 시대에 꽤나 도움될 말들인 것 같다. 

1. 우리는 대학에서와 같이 인문학과들이 다른 전공들과 어떻게 다른가 라는 질문을 이용하여 인문학을 정의해서는 안된다. ... 학자들 중엔 두가지 부류가 있는데 1) 지식을 발전시키 방법으로 표준화된 기준들에 부합되기 위해 바쁜 사람들과 2) 인류의 도덕적 상상력을 확장시키는데 관심인 사람들이다. - 인문 지식인은 두번째에 해당되며 주로 "무엇이 가능하고 중요한지" 에 관한 우리 인식을 확장 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리고 다른 과들에 비해 인류학과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2. 이 사람들에게 교육은 단순히 "지식의 소통" 이 아니라, 학생들을 "휘저어서 생각하게끔 (stir up)" 만드는 것에 가깝다. 주로 새로운 연구 지원금을 신청할때 각종 방법론 등을 적어내야 하지만,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더~ 정말~ 많은 책을 읽고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3. 이들의 진정한 사회적 기능은, 학생들에게 스스로가 그리고 있는 자기자신과 사회에 관한 의심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4. 공공 자금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있을때는 이러한 사회적 기능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 하면 안된다. 관계 당국 혹은 재단들에게 우리의 일이 "사회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일이라는 점을 말할 수는 없다. 납세자들에게 우리가 당신의 자식들을 "다르게 생각하는 아이" 로 만들고 있다고 얘기할 순 없다. 세상 어떤 사람도 무언가를 완전히 드러내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ㅋㅋㅋ)

5. 인문지식인은 이 땅에 신의 나라를 만드려고 노력하는 해방신학자들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인문학을 정치화 시키는 대신에 그저 지식을 소통하고 쌓아왔다.  비 정치화된 unpoliticized 인문학의 아이디어를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6. 우린 여전히 각종 재단이나 권력에게 "소음" 을 들려줘야 한다.  "훌륭한 객관적 기준" "근본적인 도덕적, 정신적 가치" 등과 같은 말 처럼 학문계에서 익숙한 말들에 대한 소음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와 같이 반플라톤주의자, 반본질론자, 역사화시키는데 노력하는 글쟁이들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냉소적이어야 한다. 

....


11. 교육 철학자, 정부 기관들은 인문학을 이해하고 정리하고 관리하기를 시도해왔다. 중요한 점은 인문학을 지속적으로 빠르게 변화시켜서 정의되지 않고 관리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 지속적 변화와 낡은 것의 극복을 통하여, 언젠가 당신의 학과에 "이분법적 대립" 혹은 "지배적 담론" 이라는 말을 영원히 듣지않기를 원하는 학자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PS, 대학시절 현대정치사상에서도 이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수업에서는 로티를 자유주의 철학자로 분류했던 기억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의 실용주의 혹은 로티의 철학은 때로는 아전인수격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박쥐같은 철학이라며 이곳 저곳에서 두들겨 맞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철학계의 견해들에 대한 로티의 항명서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항명서이자 해설서인 이 책에서 로티가 명확하게 하는 것은 pragmatism 은 "anti-dualism" 이라는 점이다. 즉 실체와 본질의 이분법, 인과관계의 이분법, 객관과 주관의 이분법..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로티는 미국의 실용주의와 대륙의 철학.. 니체와 푸코를 잇는 철학의 흐름에서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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