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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이주민에 대한 혐오 - 배제된 계급 - 네트워크

외국인에 대한 인식, 인종차별에 대한 표면적 자세등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여러 연구와 다큐멘터리 필름등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지구화된 세계에 적응을 잘 하는 듯 큰 편견이나 차별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 듯 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자신의 삶에 깊숙히 들어오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굉장히 다른 반응을 보이곤 한다. 인종문제라는 것이 오랜 이슈였던 미국 사회에서 드러내놓고 차별하는 인종차별은 이제 쉽게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인종문제에 열려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참 많은 사람이 사실 인종적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미국의 언론이나 학자들은 누누히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언제나 나이스~ 한 수많은 백인들이 한걸음씩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유지하는 자세는 교외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는 남부의 교외지역에서는 아주 흔한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런 동네에는 대놓고 왜 남의 나라에서 자기들 나라말 쓰는거야 하고 소리지르는 솔직한 분들도 종종 뵐 수 있다)

이런 숨겨진 편견이 있는 반면에, 인터넷이라는 익명적 공간은 신원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서 표현을 아주 솔직하게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격렬한 외국인 혐오, 특히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혐오는 대단한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실제로 많은 정책이나 논의들이 사회에서 드러나있는 현상을 안고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이런 온라인에서의 격렬한 혐오, 편견, 차별 등은 그냥 세상만사 악플로 풀어버리는 일부 악플러의 소행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법적으로 혐오사이트들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고, 설령 허용된다하더라도 그것에 적극적으로 가입해서 활동하는 솔직하고 용기있는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여전히 익명의 프로파간다는 별 여과없이 전달된다. 사실 외국인에 대해 그저 신기하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이전 세대들의 혐오와 편견은 사회적 문제라고 보기는 힘든, 그저 낯섦에 대한 거부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 인터넷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세대들에게 외국인은 함께 결부되어있는 것이 많은 대상이된다. 이들의 혐오와 이들의 편견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문제를 배태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럽에서 지난 10여년간 충분히 보여지고 있으며, 결국은 공동체적 이상 자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음을 본다면 더욱 명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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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부 전공은 문화간 소통 이라는 분야이다. 문화간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주로 지구화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유동적 시민권 개념, 이 개념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연하게 만들어가며 지리적 이동을 감행하는 이주자들의 물질적-정신적 상태에 대하여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에 있어서 현실적 대안은 지구화된 자본주의 철폐라는 요원한 일은 아닐 것이다.  대신, 이미 유연화된 정체성과 상징자본을 향한 지리적 이동이 확산된 상태에서, 각 지역에 퍼져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섞어가면서 지속적인 다름을 창조하는것을 지향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일하는 계급-배제당한 계급들의 네트워크화된 문화가 지속적으로 생산되어 세계가 자본의 단일 문화 (monoculture) 고리에 저항을 조직하는 것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사실 인종적 혐오와 편견은 내가 연구하는 분야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의 혐오와 상관없이 시스템은 여전히 다양한 인종의 지리적 이동을 원하고 있으며,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공화당의 지지세력인 남부 꼴통 백인들이 멕시칸 이민자들에 대한 격렬한 혐오를 보내고 있지만, 공화당에 있는 수많은 자본세력들중에 그 인력없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그러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보다는 기 벌어진일에 대한 공존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공존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는 것에도 관심을 갖긴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문화가 지속적으로 창조되고 생산되기 위해서는 일단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연대의식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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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가장 심하게 하는 집단이 가난한 백인들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도 이주민 혐오는 노동계급에서 가장 심하다고 한다. 이 혐오의 가장 위험한 고리가 여기에 있다. 즉 계급적으로 지구화된 자본으로 부터 배제된 (exclusion) 사람들 간의 심간한 네트워크 균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구화된 자본의 내부에 국경은 존재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그 속에서 포함된 (inclusion) 된 사람들의 네트워크는 시장을 통해 공고하게 연결되어있고, 사람들은 포함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돌진한다. 하지만, 배제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가 아무리 지구적 자본의 핵심에 서 있다 한들, 결국 배제된 채 시스템의 아무런 혜택을 받지못한다.

혐오하는자와 혐오받는자는 이런 배제의 산물이며, 그 배제가 가져다 주는 가혹함은 그들 스스로간에도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없는 반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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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에서는 cultural hybridization 을 최근의 가장 "hot" 한 문화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리적 이동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다양한 조합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한다는 이론이라고 정리하면 너무 블로그스럽지만.. 여튼 Arjun Appadurai 라는 인도계 미국 인류학자의 이론이다. 

이 이론에 대한 비판이 바로 저 위에서 지적한 inclusion 과 exclusion 에 대한 문제이다. 문화를 문화적으로만 보고 hybridization 을 논하기에는 실제로 그 문화를 관통하고 있는 계급적 역학관계를 너무도 경시한다는 것이다. 문화가 hybrid되는 과정에서 계급적 결절과 연대가 고려되지 않는다면, 문화는 그저 문화라는 외피의 표현형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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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에 대한 혐오, 동일 계급간의 결절, 시스템으로부터의 지속적 배제. 이 부분은 결국 시장의 산물이며, 그 맥락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종종 이것들을 다른 레벨로 판단하여 개인적 문제 혹은 "외국인" 문제 등등으로 분류해버린다. 

저항을 위한 고민을 진행하는 뇌속에도 잘 짜여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딱히 짤방이 없어 Aihwa Ong 의 책 표지를 올린다. 배제와 포함에 대한 분석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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