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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때문에의 근대성. 논리의 폭력

사람들이 아무리 탈근대를 외친다하더라도, 우리는 꽤나 근대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하나있다. 
~때문에 라는 말이 일상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때문에라는 말 자체가 근대성 자체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이 당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는, ~ 때문에 --- 하다. 라는 선형적 (linear) 논리구조가 그 근대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근대의 시작을 르네상스이며, 르네상스의 근본 성격은 인본주의에 있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교과서로 배워왔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의미는 복고라는 점도 배웠다. 그것이 부활시킨 예전 것, 그 예전 것은 바로 그리스 로마시대의 지식이며 그 그리스 로마시대에 자리잡았던 것중 대표적인 것이 선형적-단석적 논리구조 (유명한 삼단논법을 포함하는) 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익히 교과서로 배워온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 즉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은 그것이 신에서 인간으로의 중심이동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형적 논리구조의 대표적인 표현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 때문에.. 라는 원인찾기를 당연한 것으로 삼고 살아왔다. 학문계의 난립하는 온갖 논문들도 그것을 찾아왔고, 법 체계도 그러하고 (물론 결론에 더 집중하지만), 매일매일 보는 뉴스의 글쓰기도 그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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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별로 새롭지도 않은 말을 주절거리는 이유는, 언론 혹은 인터넷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의 모습들에서 이러한 선형적 논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지 이죽거리고 싶어서이다. 근대의 과학이 만들어낸 대량살상무기가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였다면, 근대의 선형논리는 사람들을 대량으로 공포에 떨게 한다.

한 아나운서가 자살을 했다. 그간의 과정은 온갖 언론과 블로거들과 키보드 워리어들에 의해서 전파되고 있으니 내가 굳이 언급할 이유는 없겠다. 그 이후 그 자살과 "연관" 되었다는 한 야구선수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댓글 차단이라는 장치에 일반 사람들의 비난은 걸러지지만, 언론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언급하는 행위는 멈출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한 행동을 감행하는데 있어서 주된 원인이라는 것은 존재하겠지만, 수많은 원인들끼리 작용하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원인 없는 즉흥성, 당시의 맥락 등등의 것들 역시 작용을 한다. 하지만, 주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집착 (소위 말하는 근대 과학의 수렴 - 통계적 파워라는 것에 입각한 당연시여김) 은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며 ~ 때문에라는 비난의 대상을 찾아간다.

유성기업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형적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정보의 수집과 분배를 지배하고 있는 집단들이 수많은 원인과 맥락 중 한 부분을 떼어내어 주원인으로 제시해도 "말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며 상황을 왜곡시키기 편리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선형적 논리, 그리고 특히 cause and effect 라는 원인 찾기를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어떠한 프레임을 씌워서 그 프레임 안에서 만큼은 그것이 설명되기 딱 좋게 만드는 것을 당연스럽게 여긴다.
실제로 과학이라고 하는 것, 학문이라고 하는 것에서 나오는 수많은 이론들이 그런 "프레임씌우기" 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러저러조러그런 상황에서 a 가 벌어지면 b 가 일어난다" 라는 흔한 논문들 말이다. 그리고 학문계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 수록 다양한 원인과 상호관계, 맥락이 연구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더 좁혀서 단순한 선형 논리를 "말이되게" 만드는 노력만이 정교해질 뿐이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는 아주 작은 프레임 안에서의 (그리고 보통은 각종 권력을 가진 집단이 씌운 프레임 안에서의) 선형적 논리구조에 익숙해져왔고, 어떠한 일이 발생할때 비난의 대상을 손쉽게 찾아버리는 관습의 노예가 되어간다. 

이러한 논리는 결국 온갖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으며, 결국 사람이 죽거나 직장을 잃거나 하는 심각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근대에 발딛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반성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첫번째 자세는 그 근대성이 갖고 있는 논리구조에 대한 스스로의 비판적 성찰이 아닐까.  



                                     이 사진은 글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 다만 인간의 선형적이게 기억하는 시간
                                     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얼 마나 다르게 남겨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올린다. 올리고 보니 저분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글과 관련
                                     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니 오해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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