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Picasa 를 하거나 Facebook 을 하면 사진에 얼굴인식을 통한 인물 Tag 달기가 유행인듯 하다.
오래된 친구 같은 부부. 부부? 친구? 뭐 사실 모르겠다. May 2009. Toronto. Spadania Meseum
난 여행을 할때면 초상권 침해 행위를 즐겨한다.
그저 부끄러운 짓을 찍거나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파파라치가 아니기때문에 큰 해가 되진 않는다는 말로 합리화시키고 있지만, 찍을땐 늘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한글로 된 사이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 외국인들의 얼굴이 그들 주변으로 흘러갈 염려가 없다는 합리화도 시키곤한다)
얼핏. 불륜? 근데 사실 알고보니 이들이 오래된 친구같은 부부.
저 위에 분들이 불륜. 이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피카사에 사진을 올리다보니, 얼굴이 인식되었으니 이름 태그를 붙여보라는 안내가 나온다. 그리곤 클릭을 했더니 그 얼굴들만 오려져서 태그가 붙여지길 기다리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리고 난 이들이 누군지 하나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메이카에서 이민온 사람?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흑인인데 캐나다로 이민온 사람. 일 수도 있는 것이다.
토론토에서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
사진이라는 미디엄을 통해 기록으로 보존되어있지만, 난 그들과 아무런 소통도 관계도 갖지 않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갤러리와 스튜디오가 모여있던 그 곳을 지나시던, 한 할머니. 시간을 멈춰버린 자태.
"시간을 달리는 할머니"
May, 2009 Toronto, Distillery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당시의 상황을 알 수도 있지만, 그저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아무런 context 도 느낄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해진다.
== global village 와 global city
맥루한의 글로벌 빌리지라는 논의는 분명 다분히 낙관적인 관점이었다.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테크놀러지를 통해 부족과 같은 빌리지 형태의 거대 공동체를 형성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분절화 (dissociation) 은 지극히 도시적이다. 아니 아주 대도시적이다.
우리는 무수히 스치는 사람들과 테크놀러지를 통해 관계를 맺지만, 사실 그 관계의 거의 모든 의미는 분절되어있고,
기억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서로를 투영시키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분절된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
잡념을 쏟아내다.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 아이는 렌즈에 시선을 빼앗긴다. May 2009 Toronto Disti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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