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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날저런날

샌디에고에서 만난 핑크


사실 새삼스러울 수도 있겠다. 이미 한국에도 각종 마라톤 대회와 걷기 대회가 있고, 각각 나름의 주제를 갖고 연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행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 온 이후로도 각종 걷기대회를 많이 보아왔고, 주로 이런 행사는 특정 질환에 대한 연구기금 확충과 환우들을 위한 지원행사이곤 했다.

특히 미국에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AIDS, 알츠하이머, 당뇨에 관련된 행사들이 많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많은 것이 바로 유방암 관련 행사이다.




유방암 관련 사업은 이미 "핑크 리본" 이라는 것으로 널리 사업화 되었고, 웬만큼 유명한 상품들중 여성과 가족에 해당되는 제품들에는 이런 핑크색 상품이 한두가지 이상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구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걸리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발병하는 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이런 행사와 활동 덕분에 대단히 높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의 상업적 이용이라는 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논하기 전에, 사회적으로 인지되지 않은 질환과 그 예방 치료를 위한 노력을 광범위하게 전개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아직도 우리에겐 질병을 환자에 국한시켜서 사고하는 경향이 남아있다. 그 질병의 사회적 병리원인과 질병이 가정과 사회에 미치는 파급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서도 공공의 연대의식은 세금을 내는 행위만큼 중요할 수 있다. 납세행위가 당장 내 수중에 들어오는 이득이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환원될 것을 기대하는 행위인 것 처럼, 지금 건강한 내가 질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에 연대의 활동과 마음을 보내는 것 역시 공공보험과 같은 행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공보험이라는 완벽한 공동체주의적인 제도가 마련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필요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 아직 한국이 미국보다는 훨씬 낫다.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정책도 여전히 어린이에 대한 커버에 국한될 것으로 예상되고, 어른이나 이민자는 그 대상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한국이나 미국이나 의료보험이 보장하는 질환은 매우 제한되어있고, 자본주의 의료체계 현실 속에서 실제로 사회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는 많은 병들이 보험에서 소외된다.)


지난 11월 샌디에고가 오래전 멕시코의 땅일때 모습이 꽤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Old Town 을 둘러보고 Balboa로 가던 길.

우린 언덕길 굽이굽이 핑크로 가득한 사람들의 행렬을 보았다. 화려하게 장식한 핑크빛과 사람들의 밝은 표정, 그리고 남녀노소 구분없는 행렬들.




그동안 이런 행사를 많이 봐왔지만, 유독 그날의 사람들은 머리속에 오래남는다. 그만큼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밝았고, 사람들에게서 공동체적인 연대의 행위가 축제 이상의 행복한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이 나에게 오래 남는듯 하다.

도시 전체를 휘휘 감아내는 핑크빛.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유방암과 같은 것은 그저 여자의 일. 로 치부되어왔을 것이다. 남성성이 강조되고, 제도적 남성중심주의 속에서 이것은 여전히 여성단체의 몫이고, "일부" 계층의 일처럼 치부가 되어왔을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하게 AIDS 같은 "사회적 혐오병" 은 그런 행사 하나도 화끈하게 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으로 알고 있다.

이곳에서도 오랜시간이 걸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각종 질환에 관한 "리본" 과 행사들은 이곳에서 아주 활발하다. 그리고 그건 함께 치료해야 하는 병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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