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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날저런날

도시에 정착하기.


원래 어디 출신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매일같이 수십층의 고층 아파트에서 눈비비며 출근을 했던 서울과 수도권의 사람도 7-8년간의 작은 도시 게다가 교외 Suburb  의 삶을 보내다 보면 출신성분은 그냥 "아..이랬었지" 라는 생각의 참고 사항만을 남기게 된다.  

도시로 나오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부정 변증법" 적인 이유는 나의 "suburban life" 가 인내의 끝을 달리고 있음을 느꼈다는 것이 가장 컸으리라 싶다. Ben Folds 가 "Rockin the Suburb" 에서 결국엔 FUUUUUUUUCK 을 외칠 수 밖에 없는 그 교외의 진절머리나는 "유사함"과 "반복" 으로부터 탈출이었다.

그렇다고, 양평에서 서울로 이사가는 그런 넓이가 아닌관계로, 처자식을 집에 두고 비행기 타고 홀로 올라와 집을 구하러 다니는 불편도 감수해야했고, 지난 글에서도 얘기했듯 트럭을 타고 차를 매달고 바닥에 남은 소스까지 주섬주섬 싸들고 이사를 와야만 했다. 언제 그렇듯 불편은 잠시 감수하면 된다. 어쩌면 참 간단한 일이다. 그저 매일 불편하지 않은데 감사할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착한척 하는 긍정적 마인드가 이럴땐 도움이 된다.

여하튼, 지난 8월 나는 3일간의 집찾기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는 집찾기에 돌입하기 전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시내 시내 시내.
걸어다닐 수 있는 삶에 대한 지극한 구애. 파 한단을 사러가기 위해서도 차에 시동을 걸고 조금 더 가까운 위치에 주차를 하겠다고 질질거리고, 결국 파 한단 사는 것은 기름값에 해롭다는 생각으로 아이스크림에 보지도 않을 두개에 10불짜리 흘러간 DVD 를 사 갖고 나오는 무모한 대량소비의 현장으로부터의 탈출.

너른 벌판 길을 가로질러 운동삼아 마트에 다녀오는 부부를 이상하게 여긴 차 한대가 서더니 갑자기 들려오는 한국말

(차가 없는 무모한 유학생이라 생각한듯)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됐나봐요?? 어디 사세요??"
"아..예.....그냥...좀...걸을려구요...."
"그래요? 교회 다니세요? 저희 교회 나오세요!!"  (그러고 보면 교외나 교회나 참..내 취향은 아닌듯 하다)

이런 대화를 겪을 수도 있는 걸어다니지 못하는 동네말고. 대중교통도 많고 사람들도 어슬렁 거리는 시내 시내 말이다.

2. 나무바닥.
미국에 와서 처음 의아했던 여러가지들 중 하나는 "도대체 왜!"
집에서 신발도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바닥엔 왜 그렇게 맹렬하게 카펫을 깔고 사는지!

사실 뭐 좀 살만한 여건이면 좋은 카펫을 깔고 시시때때로 30년전 오란씨 광고보다 더 촌스러운 CM 송으로 광고에 700 오빠오빠보다 더 반복적으로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카펫 클리너에게 집을 맡겨서 청소를 하겠건만.. 그렇지도 못한 여건에서 카펫은 영 마뜩지 않은 위생 사각지대일 수 밖에 없다.

그 싸구리 화학섬유가 가져다주는 발바닥 각질은 그 옛날 엄마의 뒷꿈치를 고문하던 돌덩어리를 써볼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게다가. 리안양이 "무엇이든 맛을 보세요" 를 실천하는 시절이 곧 돌아올 우리에겐 더욱이도 마루바닥이 절실했다. 

3. 다양한 색깔. 
사실 시내에 대한 기준과 상통하는 기준으로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White Middle Class .. 폴로티에 치노바지... 나이키 골프모자에....도요타 캠리....Oh. My. God. 

White trash, Redneck..흙탕물 범벅의 GMC 트럭...말구두에 뢩글러 청바지....발음이 우웨웨웨..워웨웨.. 정도로 들리는 남부 사투리. Shiiiiiit the...F. 

학군..학군...학군... 백인중산층의 삶을 동경하다못해 살까지 벗겨버릴 기세로 가로등 하나없는 교외의 똑같은 집에 짱박혀있는 "글로발" 코리안들. ....즐.

격리된 난민 수용소. 남쪽의 국경을 넘어온 라티노들. 그리고 우리.. 부로들... 흑인들. 휴...휴...휴...

미국 어디에도 이들이 제대로 섞여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그래도 최대한 섞인 곳을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그 분명한 경계선이 갖고 있는 문화적 파행은 더이상 버겁다. 


그리고 기타 등등의 조건에 맞춰 집구하기에 나섰고. Apartment People 이라는 세입자에게는 완전 무료로 집 구경을 다 시켜주고 계약 중계까지 해주는 시카고에만 있는 로컬 회사의 도움을 받아.... 게다가 가로수도 울창하고 주차도 가능하고 지하철역이 지척에다가 미시건 호수가 두어블록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아파트를 하나 빌리게 되었다. 




그 곳에서의 삶이 시작된지도 훌쩍 한달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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