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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

회색 섬. 몬트리올.


같은 행선지로의 여행을 여러번 가보는게 좋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아마도 날씨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평생 단 한 번 가본 어떤 여행지는 일상의 삶중에 문득문득 떠올려지곤한다. 그런데, 시각의 마술은 내가 가본 그곳을 늘 그 날씨 아래의 풍경으로 기억세포에 저장일 시켜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여행기간동안 변화무쌍한 날씨로 다양한 빛의 각도로 공간을 조명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행운도 있지만, 사실 그리 쉽지 않다. (여기 오클라호마는 봄에 오면 손쉽게 가능하기도 하다 - 보너스로 종말적인 우박폭풍도 볼 수 있다)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에, 아주 먼 곳에 살면서 다녀왔다. 퀘벡까지 가는 일정상 결국 몬트리올은 오다 가다 두번 지나게 되었으나, 두번 모두 잔뜩 흐린 날씨에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덕분에 기억속의 몬트리올은 흐리다. 비가온다. 아직까진 그렇다.



몬트리올의 유명한 건축물. Habitat 67 정확한 대칭구조의 이 아파트 (이 사람들 개념에서는 콘도미니엄)에 대한 정보는 http://en.wikipedia.org/wiki/Habitat_67 가 더 정확할 듯 하다. 이곳에 들어갈때 강위의 섬 두개를 어떻게 어떻게 돌아가다가 들어가서 어떻게 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는 불가능 하다. 감으로 갔다고 보면 된다.


몬트리올을 관광하는데 있어서 언어적 어려움은 별로 없어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했고, 공식적인 표지판엔 영어가 대부분 병기되어있다. 하지만, 일상 생활로 들어가면 달라보인다. 예를 들면 빌딩 지하 주차장 같은 곳에서 그렇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지만, 주차장들마다 나름의 요금 징수 체계가 있어서, 자칫 실수하면 차와 기계가 설치된 곳을 몇번씩 왔다갔다 움직여야 하는 경우들이 있곤하다. 몬트리올에서 처음 차를 세운 다운타운의 한 주차장 역시 좀 다른 모양의 기계와 시스템을 갖고 있는 듯 했으나 온통 프랑스어 설명서만 붙어있어 곤란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길 표지판도 종종 프랑스어만 적혀있다. 뭐 사실 기본적으로 유럽어족이라 눈치밥으로 다니는데 문제는 없지만,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사실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고, 또 달리 생각하면 좀 배려를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좀 여러번 생각해보고 저렇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며 그냥 적응한다.



가끔 미국 캐나다를 여행하다가 우리끼리 그런말을 하곤 한다. "어 외국같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말이다. 이미지, 상징, 문화, 등등. 그리고 또 무언가를 보면..어 외국같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온타리오주를 지나 동쪽으로 퀘벡에 들어서면 자연이 좀 더 자연스럽게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거친 느낌도 주고, 역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그러다가 등장하는 몬트리올은 회색빛 섬 같은 느낌이었다. 엉켜있는 도로와 지독하게 길을 틀어막는 교통량, 경적 소리, 고층 빌딩, 쇠락한 동네들.. 여느 미국의 대도시 처럼, 그리고 토론토와는 조금 다르게 쇠락한 곳은 쇠락한 대로 존재하고, 격리된듯한 다운타운과 더 격리된듯한 녹색 공간들이 뒤엉켜있다.



다운타운 입구 동네 식당. 이름을 외우고 인터넷에 알리는 부지런한 사람들 덕분에, 종종 한국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을 보곤한다. 난 부지런하지 않다. 맛있고 친근한 분위기인데, 그런 식당은 얻어걸릴때 더 기쁘다. 쪼르륵 찾아가는 것 보다. 그래도 나름 창에 붙은 가게 이름이 정보를 주고있다.


커다란 강을 바라보고 있어서 시원한 느낌 갖기 충분한 다운타운엔, 오래된 건축물들이 고풍스러운 골목길을 형성하고 있고, 그 사이 사이 다양한 상점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다. 하지만, 또 그 뒤편에는 올림픽까지 치룬 산업도시의 치열한 시멘트 덩어리들이 솟아 있다. 그리고 차들은 뒤엉켜있다.

사실 이 도시에 대해 무언가 느낌을 적고, 생각을 적는 다는 것은 무례한 일일 것이다. 왔다갔다 이틀을 그저 둘러만 본 내게, (여느 깃발부대 관광객보다 나은건 터벅터벅 걸었다는 것 외에는 별 다를게 없는 내게) 좀 버거운 작업이 된다. 게다가 미국으로 돌아오기전 마지막 행선지인 이 곳에서 우리는 좀 지치기도 했던 것 같다. 날씨도 한 몫했고, 퇴근길 교통상황도 한 몫했 말이다. 그만큼 귀도, 눈도, 코도 덜 열린 상태에서 (좀 더 닫힌상태에서) 진행된 여행은 확연히 기억의 맛이 떨어진다.

이런 때는 글을 멈춰야 한다.

중지.
 


퀘벡 독립운동도 이제 표면적으론 중지된 듯 하다.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가장 강한 듯 하다. 어쩌면 원래도 스페인의 바스크나 북아일랜드와 같은 강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차피 이들은 남의 땅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니 동기가 바스크나 아이리쉬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quebec libre 의 낙서는 곳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