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목

다시 나이아가라. 기억하기.


모든 글이란 것이 기억하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글쓰기를 미룬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기억을 쥐어짜면서 쓰지만 않으면 되니 말이다. 기억이 나는 것만 적어나가기에도 버거우리만큼 많은 삶 아닌가.
미국에 온 첫날 시차적응을 이유로 방향감각도 없이 끌려간 곳이 나이아가라였다. 물론 그런 기념비적인 날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는 법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작은 흥분, 그리고 지긋지긋했던 것들을 조금은 털어냈다는 기쁨,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장한 두려움, 이런 것들이 복합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기억의 세포들을 좀 먹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머리속, 미국에서의 첫날, 나이아가라의 기억은 홍수 수위 조절을 위해 물을 방류하기 시작한 소양강 댐에 취재나간 기자 뒤에서 나는 소리를 나도 들었다는 것이다.


Three Sisters Islands 를 가르는 다르위 폭포 반대편 강을 바라본다. 여긴 마치 조금 큰 계곡과 같은 얌전함을 보인다. 저 멀리 쓸려내려가는 물고기들을 손쉽게 잡으려고 대기하고 있는 갈매기들이 한량스럽게 앉아있다.



그렇게 나이아가라는 나에게 여행지가 아닌 생활공간의 하나가 되었다. 나이아가라 강변인 Tonawanda 와 North Tonawanda 에 살아간다는 것은, 울적한 날, 심심한 날, 누가 온 날, 대화가 서먹하게 진행되지 않는 날, 등등의 날 나이아가라에 가는 것이라고 얘기한다면 좀 오만스런 로망 자랑하기가 되지 않을 까 싶지만, 그런게 사실이다.

강변을 따라 Niagara Falls City에 들어서면, 산업의 쇠락한 흔적으로 한껏 우울함에 젖을 수 있다. 강변의 듀퐁 화학 공장도, 몇몇 정유공장들도 일부는 가동이 중단되고, 그 뒤로 펼쳐진 온갖 자재들이 널린 벌판도 그저 풀과 섞여 우울한 감성만을 자극시킨다. 언젠가는 노동자들의 대단한 왁자지껄함이 있었을 듯 한 도시의 골목 하나하나는 그저 "슬럼" 이라는 사회학적 용어로 정확히 정의 될 수 있는 공간적 황폐함과 인간적 무희망스러움이 을씨년스럽게 베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미국의 여느 경제적으로 회생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도시들이 그러하듯, 거대 카지노가 불편한 세련됨의 대조를 이루면서 놓여있다.

미국쪽 나이아가라야 워낙에 별로 개발된 것이 없어 간단할 듯 하지만, 처음 찾을땐 일방통행으로 돌아돌아 있는 주차장들이 사람의 방향감각을 잃게하기 좋다.

좀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사실 영화를 보든, 음악을 듣든 그 문화를 소비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만큼은 절대 사전정보를 즐겨 보지 않는 나의 별 기이하지 않은 성향은 여행에서도 적용되곤 한다. 여행가는 길까지는 아주 열심히 지도도 들여다보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그 목적지에 대해서 만큼은 정보를 꼼꼼히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건 남의 눈으로 내 시야의 각도를 결정하는 매우 불성실한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면 너무 깐깐해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 첫 느낌만은 온전한 나의 감상이고 싶은 "한 번 사는 인생에 오는 한 번 오는 첫번째" 에 대한 조금은 집착적 예우일 것이다.

여하튼, 그래서 난 그 일방통행으로 빙글빙글 한 두 바퀴를 주차장 주변을 배회했고, 덕분에 나이아가라강의 물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그 폭포를 보기 전, 그 거대한 물의 덩어리들이 마지막 벼랑끝으로 달려가며 용틀임을 하는 곳에 차를 댈 수 가 있었고, 나의 사실상 나이아가라에 대한 첫 기억과 첫 감상과 첫 매력은 바로 그 곳에서 시작되었다. Three Sisters Islands.

물보라의 격렬함을 좀 더 표현해볼 요량으로 망원으로 찍으니 참 풍경에 대한 모독이 되어버렸다. 좁은 앵글.. 우... 물은 절벽으로 쏟아내려져간다.


나이아가라와같은 거대한 자연의 구조물은 주차장과 같은 인간의 편의 시설에서 쉽고 간단하게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일 수 있게 허락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이아가라는 그렇지는 않다. 캐나다쪽 나이아가라는 운전하며 지나가면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미국쪽도 사실 몇걸음이면 나이아가라의 장관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폭포라는 것이 갖고 있는 "자연적 성향" 에 익숙한 우리 엄니는 처음 이 폭포를 보면서 의아해 하셨다. 사람의 흔적과 너무 섞여있기때문이셨더란다.) Three Sisters Islands 에서 볼 수 있는 그 급류의 용틀임도 그 곳으로 접근하느 주차장에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구름다리 같은 것을 두개 건너 세번째 자매 섬에 도달하면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리위에서 보는 나이아가라의 모습은 그저 장관이다. 솟아오르는 물보라를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는 그 폭포의 규모를 뒤에서 바라보며 기대한다는 것은 10가지 웃긴 것 중에서 9가지 보여주는 코메디 영화 극장 예고편보다 훨씬 자극적이라는 것은 누구든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섬에 도달해 보는 급류. 발 하나라도 잘못 담갔다가는 그냥 한방에 폭포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공포심이 가장 먼저 작용해야 정상인 것인지, 아니면 그 멋진 광경에 우왕..만을 외치는게 정상인지 모를 복합적 감정을 갖게 하는 그 웅장함과 격렬함은 내게 늘 그곳이 나이아가라 라는 생각으로 남겨진다.
사람들이 쪼르르 몰려서 쇠기둥 뒤에서 사진찍기에 열을 올리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흔함에 대한 괜한 투정이라 그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약간 닫혀진 느낌이 드는 숲 같은 공간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급류의 물살들이 일상의 고민을 털어주는 역할을 해줘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

 

용틀임. 발을 담그는 순간 신문에 난다. 벌금도 물고. 자이로드롭스런 느낌도 잘하면 느낄 수 있다.


그 곳은 그 첫 기억 이후로, 나의 해우소가 되었다. 글이 막혔을때, 영어가 고문할때, 사람이 그리울때.. 그곳에 찾아 바위위에 앉아 물을 바라보곤 하는 참 촌스러운 시간의 공간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열을 올리며 그 곳으로 안내한다.
절벽으로 떨어지기 전 물의 격렬한 물보라를 바라보며 무명선수들의 오픈 경기를 보면서 분주한 마음으로 본경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내 첫 기억을 조금이라도 공유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 
 



5월은 찬란한 나이아가라가 시작되는 달이다. 주차장 요금을 징수하기 시작하는 달이기도 한다. 그치만 Three Sisters Islands 주차장은 항상 무료이다. ㅎㅎ



'유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아가라. 주변부의 가치  (0) 2010.05.24
핵심의 재설정. 나아이가라 주변 둘러보기.  (0) 2010.05.22
퀘벡..... 여행. 다름.  (1) 2010.04.12
여행과 마음  (0) 2010.04.11
오타와. 시간쌓기의 디자인.  (2) 2010.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