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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도시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걸음'의 조건

맥락을 모르면 소통이 안된다. 

가가 가가가?’ 라는 경상도식 표현이나, ‘거시기가 거시기여라는 전라도식 표현이 일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화자와 청자간에 공유하는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집단과 오랜 시간을 공유함으로써 이 맥락을 몸으로 익힌다.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복잡한 걸음의 이동 경로는 그 공간의 맥락이 된다. 학생들의 이동경로, 직장인의 이동경로, 주말의 이동경로 등등은 기록되지 못할 만큼 촘촘한 그물망이 되어 특정 공간의 깊은 맥락이 된다.

 

동두천. 미군들 거리의 한 벽화. 동두천 공간의 역사성에 대한 수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벽화. 그 역사사회적 맥락으로 이야기 하는 그림

일상의 걸음에 대한 이해는 이 오묘한 "맥락"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맥락은 언어로 치면 문법, 그 이상의 의미를 결정짓는 공유된 경험과 감정이다. 인터넷과 함께 나날이 등장하는 신조어들을 어려워 하는 윗세대들은 언어의 문법은 이해하고 있으나, 그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다보니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것이 맥락이다. 어떠한 정해진 법칙에 더하여, 반복되어 공간과 상황과 소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무형적으로 이해하고있는 원래 그러함이 맥락이다. ‘여기서 왜 그러면 안되는거지?’ 라는 종류의 질문을 할때 조금은 난감하게 여기선 원래 그런데…’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맥락이다. 걸음을 통해 공간을 공유하고 마주하면서 갖는 공통된 경험은 도시 공간 내에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공유된 맥락을 형성한다. 

 

1940년대 캐다나에서 진행된 한 연구는 이미 당시 대도시 주민들은 골목길 모퉁이 보다는 개인의 주거단위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렇게 현대 도시의 삶은 대체로 두가지 공간으로 분리된다. 비즈니스가 진행되는 여러개의 중심과 그곳으로 출근을 하는 시민들이 머무는 주택가.   주택가라는 곳은 여느 미국드라마에서 보듯 깨끗이 단장되고 너른 앞뒷 마당을 가진 교외의 전원주택으로 이루어져있거나, 한국의 여느 도시에서 보듯 반듯하게 구획되어 지어진 높은 아파트 단지들로 구성된다. 미국 교외의 전원주택은 전형적으로 개인의 주거단위  중심이  사고로 구성된다.

 

밀라노의 쇼핑 아케이드. 자본주의가 정점으로 치달으며 유럽 중상류층의 소비의 일상을 형성한 공간. 

 

이런 개인의 주거지역에서 자동차로 한번에 이동하여 여러가지 일을 한번에 해결할 있는 쇼핑프라자는개인의 일상’ 과 개인의 이동 최적화 된다. 한국의 아파트 교외 신도시 아파트 단지 역시 아파트라는 밀집주거라는 차이만 있을 이러한 미국식 교외 주택단지와 크게 다를 없이단지내생활 환경이라는 분리된 주거환경을 추구한다. 집이나 단지에서 출발한 차는 넓은 도로를 통해 다른 집들과 단지들을 빠른 속도로 지나치고 쇼핑몰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안에서 영화도 보고, 의사도 만나고, 먹을 거리도 구입하고, 다시 온길을 되돌아 집이나 단지의 주차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공간구조에서 우리는 일상의 맥락을 공유하기 쉽지 않다. 물론 '소비의 맥락'은 공유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자신의 필요 공간을 뛰어넘듯 이동하는 동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감각은 점점 무뎌진다. 자주 마주하지않고 건너뛰다보면 어느순간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제인 제이콥스가 말했듯, 도시 공간이나 구조물이 우리의 삶을 결정짓지는 않지만, 부적절한 공간, 구조물 디자인이 도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 것이다. 관심이 없으면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소통이 사라진다. 

walkscore.com 도보지수와 부동산을 결합한 서비스. 홈페이지 캡춰.

 

20세기 후반기 이러한  잘못고안된 교외주택단지에 대해 신물을 느낀 미국의 일부 사람들은 다시 도심이나 준도심의 사람과 시설이 밀집되어 소통할 있는 지역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교외의 주민들이 종종 보여주듯, 잔뜩 경계한 눈빛으로 새로 이사한 주민을 바라보는 일상과 모두가 똑같은 동선으로 똑같은 상점에 들르며 획일화 되는 삶에 신물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전형적 미국-백인-중산층의 이미지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젊은 중산층에게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사람들은 문화적 유행을 선도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주도해 도시의 새로운 주류가 되어 서구 많은 도시들의 구조 변화를 이끌어 왔다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지독한 모순을 주도한 이들이기도 하다). 이 복잡한 정치-경제 관계가 어찌되었든 간에, 도시에서의 걸음의 가치를 세우는데 공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일부 부동산 정보는 도보가능지수 ‘walkability’ 라는 지표를 소개한다.  특별히 표준화 지표는 아니지만, 앞으로 살게 집에서 얼마나 걸으면 대중교통과 은행, 관공서, 식당 등에 도달 있는지걸음 중심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가 걸어다니기 위해서는가까워야한다는 자명한 경험에 근거한 정보를 주는 것이다.  

 

다음 글 부터 몇가지 중요한 걸음의 조건을 하나하나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