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통하는 도시

걷기: 도시와 소통하기

일찍이 20세기의 전반기에 루이스 멈퍼드가 도시의 거리는 삶의 드라마가 연출되는 무대라고 정의했듯,  100 층에서 바라본 도시의 저 아래 길위의 하나하나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있는 드라마이지, 밝은 조명과 잘 꾸면진 세트장으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니다.  도시 골목 사이사이를 걷는 행위는, 미셀 드 세르토가 얘기하듯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의 내용을 만드는 드라마의 제작 과정이다. 여기에서 우리 보행자들은 그 공간의 내용 조합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생산물, 즉 자발적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또한 그렇게 인코딩 된 내용들을 상호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생산에 개입된 소비를 함으로써) 복잡한 생산과 소비의 상호작용하여 다시금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대안적인 공동체 미디어는 이러한 이상을 지향한다.

 

잘 짜여진 공간에서 정해진 동선으로 움직이는 도시는 소통보다는 소비의 공간이 된다. 영국 리즈의 한 쇼핑몰. 어디 갖다놔도 어색하지 않을 규격 공간

거대한 자본이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는 환경에서, 공동체 미디어가 성공적으로 유지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의 도시공간도 마찬가지이다. 멋들어지게 만들어진 쇼핑몰은 우리 일상에 필요한 (혹은 필요하다고 믿게끔 만들어진) 시설들을 다 갖추고 있다. 그렇게 잘 갖추어진 공간은 사람들을 흡인하고, 사람들은 쇼핑몰의 꼼꼼한 계획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마치 MC 채널 고정!’ 을 주문처럼 받아들이는 시청자 처럼. 반면, 우리 동네 주변의 일상 공간은 여전히 공동체 미디어처럼 자발적이고 상호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이는 프로그램화 되지 않은 일상의 걷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걷기가 도시를 구성하고, 그 구성된 도시는 다시 걷는 사람들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걷는 사람과 사람의 조합은 그 공간에 이야기를 채운다.

 

걷는 행위와 도시공간의 관계는 말하는 행위와 언어 혹은 발화된 말의 관계와 같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이 언어를 하나한 점유하듯이, 보행자가 도시 공간의 지형을 점유하는 과정이다. 또한 말하는 행위가 언어를 연출하여 연기하는 행위인 것과 마찬가지로 걷는 것은 어떤 장소를 공간적으로 연출하여 연기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말하는 행위가  상대방을 가정하고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듯, 걷는 행위는 서로 다른 공간적 지점이 관계를 맺게 주선하는 역할을 한다. (Michel de Certeau,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p. 97-98)

 

보행자. 내 모습.

걷는 것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어떤 도시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곳을 지나고, 우리는 시각적으로 그곳을 차지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시각적 부분의 풍경을 바꾸고 구성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요소로 첨가되고, 첨가된 하나의 요소는 공간의 의미를 바꾼다. 촘촘히 짜여진 의미의 망은 새로운 요소가 들어오면서 없이 많은 새로운 의미 조합을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공간에 말을 건다.  걸음을 통해 대중교통의 공간과 새로 들어선 동네 카페와 건너편의 놀이터는 서로 관계를 맺는다. 나의 걸음의 흐름, 동선은 지역의 리듬을 만들고 나아가 맥락을 형성한다. 문화는 소통에서 비롯되고, 문화는 맥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특정 맥락은 일상의 소통을 이해해야만 가능하다는 문화인류학적 이해는 이렇듯 동네 공간에서 나의 걸음이라는 소통행위를 통해 증명된다.

 

그렇게, 대중미디어에서 내용의 생산과 소비를 대중소통 (매스 커뮤니케이션) 이라 부르듯, 걷기는 우리 도시공간소통 그 자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