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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도시

매스 미디어 처럼 소비해 버리는 도시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두가지 종류의 소통을 한다. 하나는 몸짓부터 대화까지 우리 일상에서 사람들과 하는 각종 소통이며, 다른 하나는 여러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세지를 접수하는 대중매체에 의한 소통이다. 최근의 기술 발전으로 이러한 두가지 영역은 복잡하게 얽히고 있으니, 이러한 분류는 이제 큰 의미가 없는게 사실이지만, 도시공간을 소통의 당사자이자 소통의 매체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 분류는 여전히 편리하다.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일상사 사람들과의 소통에는 전화통화, 메신져, 토론모임, 친구들과의 수다 등이 있다. 한편 매체에 의한 소통은 방송 신문 등은 물론 기업의 홍보물, 정부의 발표 등도 포함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통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독백은 대체로 소통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 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소통의 가장 우선적인 조건은 메세지를 전달하고 받을 대상 (그것이 사람이든 아니든) 이 둘 이상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메세지를 만들고, 전달하고,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다시 재가공하는 과정을 거치려면 어떤 규모로든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고, 그 과정으로의 최소한의 몰입이 필요하다.

 

전철은 공유하는 공간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개인이 점유하는 공간이 된다.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전제조건을 도시공간소통에 적용해본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공간과 사람간의 눈맞춤이다. 고개를 숙인채 휙 지나가는 행인1 과 우리는 옷깃만 스쳤을 뿐 인연을 만들지 못한다.  시속 100km 의 자동차의 뒷창으로 점이 되어 사라지는 공연홍보 현수막의 메세지는 머리속에서도 점이 되어 이내 사라진다. 각 개개인은 도시를 철저히 개인의 공간으로 점유한다. 개인의 목적지만 남은 이 도시공간 속에서의 이동은 기록되지 않는 독백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도시에서 우리는 공간이나 타인에 대한 관심을 서서히 잃어간다.19세기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목격하며, 엥겔스는 맨체스터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미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일상을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고 전한다.  즉 계급에 따른 도시공간의 경계가 형성되고 교통수단으로 도시 한 지점과 한 지점이 연결됨과 동시에 사람들의 흐름이 단절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공간과 사람이, 혹은 사람과 사람이 눈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접촉이 필요하고, 그 접촉을 가능케 하는 장치의 조합들이 필요하다.

 

(위로부터 조망하는) “파노라마 도시는 이론적인 (즉 시각적으로만 가능한) 가상존재이다. 달리말하면, 현실로 부터 괴리될 때만 존재가능한 가상존재이다. 전지전능하게 모두 내려다 보는 신과 같은 관찰자는 오직 그 스스로가 일상의 복잡다난한 현실로부터 괴리되어야 하며 그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 되어야만 한다. 도시의 일상 행위자들은 저 아래, 겨우 보이기 시작하는 그 지점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도시 경험의 가장 원초적인 행태로써 걷는다. 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비록 읽을 능력은 없지만 자신들이 작성한 도시공간 텍스트의 결을 따라 걷는다. 이 일상의 보행자들은  겉으로 보여지지 않는 공간들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결정한다. (Michel de Cergeau, The Practices of Everyday Life p. 93) 

 

미셸 드 세르토는 지금은 흔적없이 사라진 맨하튼 무역센터에서 내려다 본 파노라마 도시를 예시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내려다 본 맨하튼. 십 수년 전. 

 

미셀 드 세르토의 파노라마 도시의 비유는 대중매체로서의 도시공간을 이해하는데 좋은 힌트를 제공한다. 미디어에서 전달되는 내용은 그 내용을 구성하는 과정 (인코딩)과 그 구성된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이 두과정은 기계적으로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그 생산의 규모와 전달의 규모다 대단위로 일어날 때 우리는 매스미디어라고 명명한다.

 

미디어 시장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은 현실의 다양한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무엇이 더 가치가 있는지, 무엇이 더 옳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과 같은 메세지가 미디어의 상품을 통해 대량으로 전달된다. 이러한 메세지는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즐거움을 매개로 하여 은연중에 우리의 삶에 녹아든다. 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는 삶의 복잡한 맥락을 분석해서 풀어낸 후에만  (디코딩) 비로소 가능해진다.  파노라마 도시는 이러한 상업 미디어의 생산물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100층 전망대에서 보는 도시의 구성은 위에서 조망할때 보여지는 한 단면이다. 이는 수많은 도시의 모습중 하나의 표현일 뿐이다. 관광엽서와 같은 도시의 스카이라인과 건축물, 기념물의 이미지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재해석, 재구성되어 생산된 이미지이다. 도시 구역별로 분리된 다른 계급과 다른 인종들의 공간이 100층 전망대에서는 한데 어우러져 조합된 이미지로만 남는다. 그렇게 만들어신 도시의 전망 (스케이프) 은 때론 관광엽서의 이미지 처럼 고정된 상품이 된다. 이렇듯 도시의 파노라마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문객들에게 이 도시는 충실한 상업미디어가 되어 소비하기 좋은 프로그램들을 생산, 배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