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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날저런날

공짜는 머리가 벗겨지게 추워도 좋다.


Lincoln Park.
시카고로 이주하기로 결정했을때 제일 먼저 머리속에 들어온 긍정적인 점은 바로 Lincoln Park 의 존재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대도시, 마천루, 복잡한 도로, 지하철.. 때로는 매력적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숨막히게 하는 대도시의 이미지에 지속적인 장점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 공원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철저한 계획도시인 시카고의 장점은 아마도 수많은 공원과 자연숲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Lincoln Park 은 시카고가 접하고 있는 미시간 호수를 따라 길게 (길게 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정말 길~~~게) 뻗쳐있는 호변공원으로, 그 안에 넓게 펼쳐진 공간과 더불어 요트 선착장, 골프장, 테니스장, 양궁장, 그리고 여름이면 호변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백사장들이 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완전히 무료로 개방되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다.

      아직 추워지기 전 Lincoln Park


식물원까지는 몰라도 동물원이 무료라는 것은 딱히 상상되는 일이 아니기때문에 그것이 무료라는 정보는 놀라움과 동시에 시설의 질에 대한 의구심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무료라는 것은 허접스러움이 존재할때는 그 의미가 퇴색되는 법. 이 공원의 동물원과 식물원은 그다지 규모가 크진 않지만 그 구색이 제대로이고, 게다가 여러가지 계절적인 이벤트도 완전히 무료로 개방되어있는 진정한 "양질의" 공공 공간이다.

물론 이해할 수 없이 비싼 주차료를 징수하고 있지만, 그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물원과 식물원 주변의 도로중 Stockton Drive 는 시카고 거주민 딱지가 붙어있는 차는 누구든지 그냥 주차할 수 있고 (물론 운이 좋아야 하지만), 조금 떨어진 Lakeview Avenue 는 두시간에 5불이면 노상 주차가 가능하다. 그리고 알찬규모와 접근성, 그리고 어린이를 동반한 사람들의 경우 아이들의 인내심을 고려해봤을때 두시간이면 충분하다.

동물원안에는 대단히 신기한 동물들이 많지는 않다. 그리고 한 우리안에 동물이 떼거리로 몰려있지도 않다. (그래서 우린 농담처럼.. 예산이 없어서 한마리씩만 뒀나...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느즈막한 시간엔 몇몇 우리가 비어있어.. 예산이 없어서 일찍 퇴근시켰나 하는 시덥잖은 농담도 나눴다) 그래도 오래된 동물원의 낡은 느낌과 함께 꽤나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모아놓은 모습이 제대로 동물원이다.


이 동물원에서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맞이 Light 축제를 시작했다. (물론 무료다) 추운날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과 함께 와서 찬란한 빛을 감상하고 있는곳. 물론 대단히 세련되고, 대단히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투박한 아름다움이, 멀리 보이는 시카고 다운타운의 야경과 함께 잘 어우러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나눠주는 3D 안경같이 생긴 물건을 쓰면 (이 안경은 미세한 점들이 찍혀있어서 빛을 분산시킨다) 조그만 불빛들이 눈결정 모양으로 수만개의 빛으로 분산되어 입체적인 모습을 띠는 환상적인 광경을 만들어준다.

오래된 격납고 같이 생긴 실내 사자 우리에선 산타클로스와 포토타임을 갖는 시간이 마련되어 아이들이 사자 분비물냄새에도 아랑곳 않고 즐겁게 사진을 찍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미국에는 광장문화가 없다. 뉴욕에는 이런저런 Square 들이 있지만, 그것이 딱히 유럽이나 중남미의 광장문화라고 지칭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좁은 느낌과 상업화된 느낌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외의 도시에 광장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워싱턴D.C 의 National Mall 정도를 진정한 의미의 광장으로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광장적 기능을 수행했다)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 규모나 구조가 너무 분산적이다. 

시카고에는 그런 광장이 하나도 없다. 아마 "미국적" 도시 설계가 성립된 이후의 도시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Self-Reliance 가 내포된 국가이데올로기 처럼 굳어진 공간에서 광장은 어쩌면 불편하고 위험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공원에 대한 이들의 사고는 집착적이리만큼 강한듯, 도시 요소요소에 적절히 잘 배치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카고는 한국으로치면 일종의 구와 같은 구역 설정의 많은 부분들이 ~ Park 로 되어있을 만큼 공원 중심으로 지역이 배치되어있다. (물론 행정적 기능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Rogers Park 을 비롯하여 Lincoln Park, Wicker Park, Peterson Park, Albany Park 등 많은 구역들이 공원의 이름을 따고 있다. 

그만큼 공원이 생활의 중심이 되고, 사람들의 쉼이 그 만큼의 가치를 누리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의 공원은 사실 많은 부분이 사람 중심이라기 보다는 미관 중심적인 사고에서 만들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문화적 근원이 상이한 나라에서 같은 잣대로 공원 문화를 평가하는 것은 야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만들어지는 공원이 과연 인간의 삶에 대한 고려인지, 아니면 보여지기 위한 성과주의에 대한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미국 어느 공원에도 아치모양의 잔디밭 차단용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의 공원들 보다 잡초도 많고, 듬성듬성 구멍 만 곳도 많을 수 있지만. 공원은 보여지기 이전에 사람들이 도시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쉼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공원 그 본연의 모습에 충실한 모습은 아닐까 싶다. 

공 (公) 이라는 말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Lincoln Park 에서 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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