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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날저런날

학생과 입장료

시카고는 어쩌면 그 도시의 규모나 갖고 있는 컨텐츠에 비해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지리적인 이유때문이리라 싶다. 동부와 서부는 나름 여러 도시들이 들러붙어 있어서 유럽여행하듯 둘러보듯 다닐 수 있지만, 시카고는 홀로 중부북 위쪽에 박혀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슬라이드 사진첩 만들듯 섭렵하는 한국식 여행에 걸맞는 곳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시카고에는 한달 정도는 충분히 놀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고, 참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 중 최고라 꼽히는 곳이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이다.

이 미술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은 홈페이지를 가봐도, 위키피디아를 가봐도, 곳곳의 블로거들의 흔적을 살펴봐도 다 나오니 나까지 데이터 낭비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말은 귀찮아서이다.

이전에도 시카고에는 각종 컨퍼런스가 자주 열려 여러번 와봤고, 두세번 아트 인스티튜트에 들러 유명하다는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작품을 보면서, 교과서의 기억을 곱씹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이곳의 주민이되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나의 학생증을 이용하여 년 40불 하는 학생 연간회원에 가입을 했다.





이 학생 연간 회원은 40불을 내면 동반 1인을 포함하여 연중 무료이고, 멤버쉽 라운지의 커피와 핫쵸코를 즐길 수 있다. (핫쵸코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별로 유용하지 못하다. 커피가 그냥 커피향 음료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녁에 열리는 각종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고 (리안양 때문에 우리는 갈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솔직히 하는 일도 없이 혼자 가는 배신행위는 아직 자행하지 않고 있다) 그 안에 있는 카페와 매장의 모든 것을 10퍼센트 할인 받을 수 있다.

성인 입장료가 20불이고 학생도 12불인 것을 고려했을때 대단한 조건이다. 게다가 방문하신 누군가가 우리것을 덥썩 사주시는 바람에 그나마도 돈을 들이지 않았으니.

그렇게 서너번을 벌써 다녀오고, 고흐, 모네, 마네, 르느와르, 루벤스, 르네마그리트, 피카소, 미로, 달리, 램브란트, 막스에른스트, 등등등 열거할 수 없이 많은 그림들을 찬찬히 눈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게. 대도시 사는 맛이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주민에 대한 혜택과 관광객에게 철저하게 뜯어내는 이중구조에 대해 또 생각해보았다.

지난번에도 공짜를 운운하며 공공성을 논한적이 있는데, 역시 비슷한 것이다.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역에 세금을 내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문화 공간을 저렴하게 공개하는 것. 반면, 기꺼이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돈을 쓰겠다는 의지 충만하신 관광객들에게 (물론 나도 그런 관광객이 되곤 하면서 경제적으로 허덕이곤 하지만) 더 많은 금액을 지불케 하는 것은 공공성 실현의 기초라는 점이다.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모두 저렴하게 개방할 수 있으면 좋겠건만, 그것까지는 이 시장경제가 허락할 것 같지 않으니 요구하지 말자. (물론 연방의 돈이 투여되는 워싱턴 DC 의 많은 시설물들은 완전 무료를 이뤄내고 있으니.. 역시 국가는 개입되어야 한다)
예전에 중국에 갔을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내국인/학생/외국인이 확실하게 구분되어있는 입장료 구조를 갖고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 (어쨌든 표면적으론 자본주의 국가는 아닌, 그리고 국가 관리가 다른 나라보다는 훨씬 많은) 에서 조차도 외국인에 한해서는 돈을 무지하게 징수하고 있으며, 반면 내국인과 학생들에게는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생할인이 아주 잘 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해당 직원 맘인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나의 "따쉐셩" 이라는 중국말이 말도 안되게 들려서 무시 당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문화 공유에 있어서 내국인 혹은 주민 우선, 그리고 어린 (나는 물론 그..그..렇진 않지만) 학생들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과 실행은 공공성에 있어서 아주 기본으로 자리잡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한국은 문화시설이 참 저렴하다. 이는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공공성 실현이라는 측면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 요금 징수하기엔 부족한 시설이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해석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런면에서 공공 문화시설은 상당히 공공성을 잘 확보하고 있다고 하는편이 맞을것 같다. (물론 지난번에 국립 중앙박물관의 빈약함에 이죽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학생할인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나아가 

그 공공성을 통해 저렴한 입장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되, 별로 안되는 돈이라도 학생들에게는 그냥 무료로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봤자 몇백원이라도 몇천원이라도, 무료와 유료는 문앞에서의 심리적인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그리


고 그 작은 돈도 참 어렵게 모인다는 것을 요즘 새삼 깨닫는 학생들이 많은 시절이기도 하고 말이다.

쓰고나보니, 별로 공감될 만한 것도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뭐 얼마나 된다고.. 뭐.. 미국이나 중국이나 완전 무료도 아니잖아.. 이런식의 것들 말이다. 그냥.. 그런 것에서 만큼은 한국사회가 공공성에서 더 앞선다면 어떨까 하는 바램 정도로 이해해주길 바래본다. 랭킹놀이 하는거 참 지겹지만, 공공성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는 모습을 보는 건 참 즐거운 일일테다. 게다가 이렇게 그런 광경을 볼 가능성이 없는 시절엔 더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