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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날저런날

저렴함과 무료사이


외국에서 박물관 갤러리 등을 다니다보면, 때때로 그 비싼 입장료에 움찔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특별전이 없는한) 국립박물관도 보통의 갤러리들도 점심 한끼 정도의 값보다 싸기 마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수요공급 법칙을 따른다면,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같이 자기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민망하게 들릴 정도로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곳이 더 비싸야 그 시설이 운영될 것 이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마냥 허구헌날 줄 서서 기다리곤 하는 미술관 같은 곳은 티켓값을 내려도 시설 운영은 충분하리라..

는 고전경제학적 안일한 생각이 이 "관람" 에는 통하지 않는 법이다.

그 안의 컨텐츠의 문제이기 때문이리라.

박물관을 생각해보자.

사실, 식민지를 개척하고 광활한 대지에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지배정복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매일매일 "배아파"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에 있는 박물관이 다양한 문화를 담기는 힘들다. 앵글로색슨처럼 전세계에서 업어온 물건을 전시할 것도 아니고, 중국처럼 다 결국 자기네 것이라 얘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게 부러워서 동남아라도 아프리카라도 이제서라도 등쳐먹겠다고 달려드는 분들이 뭐 그나마 박물관 채울 물건들을 업어오기나 하겠냐마는 말이다)

빗살무늬의 토기와 신라의 금관이 대단한 볼거리를 전달해주지만, 국사 교과서 이상의 다양성을 즐길 수 없는 곳에서 고가의 입장료가 쉽지 않은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사실 이런 곳에서 수입이 많다한들 collection 자체를 늘리는 건 쉽지 않을 테니말이다. 물론 다양한 특별전의 소스가 마련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미술관은 어떨까.
내가 열심히 돌아다니지 않아서이겠지만, 신윤복과 김홍도는 물론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등등의 그림들을 보는 것 자체가 어려운게 한국 갤러리들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서구적 public 의 개념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적 private property 의 개념은 아주 첨단적으로 자리잡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 소유가 아닌한 멋드러진 그림들을 보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 된다.
선심을 쓰는양 공개하는 미술관도 결국은 비자금 보관용으로 사용되는 현실에서 공영 미술관이 많기도 힘들고, 그들의 collection 이 풍부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그곳들은 저렴하다. 두어시간씩 줄을 서서 다닥다닥 붙여서 만화책 책장 넘기듯 그림을 봐야하는 몇몇 특별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사실 말이 너무 많이 빗겨갔다.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그 컬렉션의 질과 양에 따라서 그 가격이 설정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에 어쩌다 또 이죽거림으로 흘러갔는지. 비뚤어진 성격은 글을 산만하게 만들어버린다.

시카고에는 Art Institute of Chicago, Museum of Contemporary Arts, Field Museum 등 잘 알려진 문화공간들이 있다. 그리고 이곳의 입장료는 "상당" 하다.

하지만 반면 이 모든 공간들이 나름의 "free days" 들을 갖고 있다. 어떤 곳은 매주 어떤 요일을 정하고 있고, 어떤 곳은 어떤 요일의 몇시 부터.. 그리고 어떤 곳은 임의로 정해서 발표하곤 한다. 또 어떤 특정달을 내리 무료로 개방하는 곳도 있다.

이런 것은 아마도 시카고에 계속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모션이 아닐까 싶다. 사설이건 공영이건 문화 공간의 공공적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동의가 Public 이라는 개념에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 공간의 홈페이지에도 정보가 있지만, 또 이러한 것을 모아놓은 사이트도 있는데 (http://www.chicagohotblog.com/chicago-museum-free-days) 이곳에 가면 아이팟 아이폰을 위한 앱도 다운 받을 수 있다. 앱을 설치하면, 오늘의 공짜 리스트가 뜨고, 구글 맵을 통해 지도로 위치를 알려주는 깜찍한 서비스인 것이다.

우리도 얼마전 이 앱을 이용하여 The 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 에 다녀왔다. 어릴적 가봤던 명륜동의 어린이 과학관을 뻥튀기로 튀겨내면 이정도의 공간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던 이곳은, 기계적 움직임에 대해 별 관심을 못갖는 우리같은 어른들에게는 살짝 뻔하고.. 아직은 엄마아빠 얼굴 보는 게 더 좋은 리안양에게는 너무 어려운 공간이라 잽싸게 다시 나왔지만
..무료로 입장했던 것이라 미련없이 짧게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이유로, 오랜시간 입장료를 뽕 뽑을 수 있을 만큼 다니는게 불가능 한 사람들에게 역시 이 무료 행사는 공공의 것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앞으로 종종 free day 를 이용해서 구경한 것들을 포스팅해야지 싶다.


      리안양보단 엄마아빠가 더 좋아했던 근대초기의 서커스 행렬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놓은 전시.
                                                                                        at the museum of industry and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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