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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

베이징. 모순의 공간. 공간은 메세지다.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세지다 라는 유명해서 흔해빠진 말을 촌스럽게 이용해보면 저런말도 가능할 듯 싶다.
공간은 메세지다.

나의 두번째 베이징 여행은 공간은 메세지라는 것을 글에 담으려 갔었고, 살인적인 더위와 먼지 공해로 인해 날씨가 메세지다..하는 생각을 품고 돌아왔다. 공부하지 말라나부다.

공간 구성에 관한 통제는 사실 권위적 국가나 소위 말하는 자유주의 국가나 외관상의 큰 차이를 볼 수 는 없다. 베이징이나 평양같은 도시를 보고 사회주의적 통제된 권위 공간이라 말 할 수 있겠지만, 워싱턴 같은 도시에서도 볼 수 있듯 한 나라의 수도를 권위적으로 형성시키는 것은 계획이라는 것이 들어가는 한 인지상정인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공간 설계 도시 설계에 대해서는 매우매우 문외한이다. 단지 Communication studies에서 하는 기호학의 차원에서 볼 뿐이다.)

여하당간 복잡한 이런저런 얘긴 접어두고 베이징을 선정한 이유를 간단히 하면,

중국이 갖고 있는 민족주의, global capitalism, 그리고 개발 이데올로기의 모순적인 공존이 공간의 배치를 통해 그리고 그 공간에 절묘하게 걸려있는 권위기구로부터의 슬로건들이 어떻게 베이징 시민들과 방문객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지를 보려고 간 것이다.


<이날의 스모그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카메라의 문제는 아니었듯 싶은 천안문의 뿌연 모습>



서울올림픽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상계동 올림픽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올림픽은 선진국으로 가는 아주 간지나는 이벤트였을 수도 있지만, 죽음으로 내모는 몰인간적인 개발이데올로기의 집적이라고 기억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는 한국에서 아직도 진행형이었음이 또 확인됐다)

그렇게 "세계로 세계로" 를 외치면서 동시에 감상적 민족주의와 맹목적 국가주의를 마음속으로 강화시키면서 남들을 "괴롭히고자" 하는 역지사지 부재의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의 침략을 비난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버러지 취급하는.. 그리고 삼성 현대가 외국에 나가서 1등했으면 하는 자본의 침략을 찬양하는.. 그런 모순 말이다.

Modernity 가 갖고 있는 모순의 삼박자. 자본의 세계화와 국가주의로까지 치닫는 감상적 민족주의, 그리고 팬시해야 한다는 집착인 낳은 개발이데올로기.

이 세가지 모습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던 올림픽 1년전의 베이징을 소개해볼까 하는데..게을러서 제대로 할지는 모르겠다.....헐.


<국가에 충실한 시민을 만드는 엔지니어링 작업은 세계화된 자본이 자신들의 활동공간에서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우리가 잘살아야해. 이 세계화된 경쟁에서 살아나야해. 우리 국가의 이익을 위하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듯한 이런 말들은 자본의 세계화 과정에서 민중들을 필연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고도로 합리화된 국가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와 국가주의는 쌍둥이라 할 수 있다>





첫번째 베이징 민족주의 국가주의 모습은 아주 흔하게 천안문 일대에서 찾는다.

만국인민 대단결 만세 라는 구호옆에 중국인민공화국 만세라는 구호가 알려주듯이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필연적 한계인 사회주의 국제주의는 중국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시작부터 충돌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만 남은 사회주의를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을 만큼,
이 두 슬로건은
그 것이 걸린 기간 만큼이나 이제 그저 풍경속에 묻어있는 상징일 뿐이다. 그 대의를 전달하기 보다는..

하지만, 인민 대궁전과 국립 박물관 그리고 세계의 중심인 중국에서의 중심이라고 믿던 자금성의 공간적 상징, 그리고 마오쩌뚱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광장 한가운데 자리잡은 그의 성지와 같은 묘역, 
절제된 움직임으로 그 자체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군인들이 이런 엄숙한 슬로건과 함께 할때
이 곳은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공간의 성격을 더하게 된다.


<성지에서 일하는 자세. 국가주의는 경직을 요구한다. 소련의 국가주의도 북한의 국가주의도 그런 경직만을 요구해왔다>


자본주의가 물밀듯 들어와도 이 일대는 commercial free 지역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그에 대한 인민들의 충성 (단결이 아니다. 충성이지.) 을 요구하는 곳이다. 

이 글에서 중국 민족주의의 성격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너무 길 것 같기도 하고. 단지 공간과 슬로건이 어떤 화학작용으로 사람들에게 작용하는지만 얘기하는 글에서 말이다. 



<천안문 광장에서 천안문으로 가는 지하도. 여느 다른 베이징의 지하도와는 다른 광고없는 지하도. 한 프랑스의 공간연구 학자는 중국정부의 천안문 일대에서의 광고 철거를 폭압적이라 비판한다. 중국 국가가 갖고 있는 반 민중적 성격을 논하면서 예를 든것이 이 곳에서의 광고 철거까지 있다. 이는 대표적으로 서구 모더니티가 갖고 있는 모순이다.
국가의 폭력을 비판하다보면, 그들이 또 비판하는 다른 측면의 자본의 폭력을 용인하기도 한다. 스스로가 왔다갔다 하면서 자본의 횡포와 국가의 폭력을 비판하는데 그러다보면 이런식으로 자본들의 광고 철거에 대한 국가를 비판하기도 한다.>




관련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사실 이 민족주의 공간에 대한 설명은 쉽지가 않았다. 어쩌면 너무 뻔한 이야기고, 어쩌면 모든 나라와 모든 공간에 공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문 일대의 국가주의적 엄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지만, 공간의 메세지를 받은 것이 아닐까.. 

연구의 객관성을 과다 강조하는 positivism 의 신봉자들에게는 별 시덥지 않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베이징 올림픽 1년앞으로. 국립박물관 벽에 붙어있던 올림픽 게시판. 다른 지역의 난무하던 올림픽 슬로건이 천안문에는 없었다.
좀 뒷북스럽게 이런글을 이제 올리는 이유는, 뭐 블로그가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일단 생계를 위해 이곳에서 글을 빨리 쓰고..발표하고 그랬어야 했기 때문이다. 뭐 사는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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