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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문화의 자리.

호미 바바 (Homi BhaBha) 라는 문화학자의 문화의 위치 (The Location of Culture) 라는 책이 있다. 사실 한글로 읽어본 적은 없는데, Location 이라는 말이 위치로 해석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쩌면 이 책에서의 location 은 "자리" 쪽이 더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가 놓여있는 자리, 그 장 (場)의 사람들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치는 웬지 좌표스럽다. 

텍스트 자체가 상당히 난해한 책이므로, 단순화 시켜서 설명하는 극악무도한 블로그적 행위를 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가장 중요하게 이해해야 할 축 하나 정도는 소개를 해야만 나의 글이 진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글의 맥락적 배경이 식민과 탈식민 과정의 문화 형성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 속에서 벌어진 문화 변동의 양상을 간단히 이해해보는게 좋을 것 같다. 

쉬운말로 이야기 할때, 호미 바바의 문화론은 문화, 그리고 그 문화의 구성원인 지배와 피지배의 주체들이 어떠한 확정되고 결론이 내려진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동적인 과정에 놓여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그동안 분류적으로 사고해왔던 지배적 담론과 정체성 혹은 "동일한 국민문화"와 같은 개념들은 사실 근대가 만들어낸 신화와 같은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경계로서의 문화 즉 제 3지대를 논한다. 

우리는 Multiculturalism 이라는 다문화주의 개념을 문화적 상대주의의 진보된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나, 이 다원주의가 갖고 있는 지배구조의 묵인이라는 점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판되어온 점이다.

바바는 이러한 다양성은 공존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지속적인 차이가 생산되고, 협상되고, 해석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본다. 문화는 자문화와 타문화의 이원론적인 공존이 아닌 변증법적으로 존재하는 제 3지대를 통해 지속적인 "차이"와 "다름"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낙에 복잡한 내용이 담겨있어서 더이상 쉽게 설명하기에는 나의 내공이 부족하다. 다만, 바바가 챕터를 걸쳐 인용한 프란츠 파농의 탈식민에 관한 책  
The Wretched of the Earth 를 함께 읽는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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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책을 소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저런 웹서핑중 발견한 한국에서의 문화를 이해하는 양극화된 경향에 대해 조금 이죽거리려고 시작했던 것이다.

# 1. 얼마전 서울시가 한강변에 런던아이 라는 대관람차를 본딴 시설물 설치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전 한국방송을 보다가 경기도 어딘가에 프랑스문화마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인터넷에서 거제도에 네덜
란드식 풍차가 멋드러지게 건설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2. 미국에서 한국문화 소개를 하는 행사를 종종 보곤한다. 대표적으로는 각학교 한인학생회들이 하는 행사인데, 부채춤에 태권도가 대종을 이룬다. 한국문화를 표현한다는 것은 몇몇 상징화된 한국 전통들을 나열하거나 전시하는 것이라 요약해도 무방할 듯 하다. 

우리 것과 남의 것이 이원론적으로 상징화되어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발명되고 단순화된 상징의 소비일 뿐이다.

외국 것을 가져다 놓는 과정에서 그 외국의 것이 우리의 삶과 역사가 묻어있는 문화속에 어떻게 자리잡게 될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좋아보이는 것으로 상징화된 그 기호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외국 것을 가져다 놓는다고 거품물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 것"이라는 상징들이 그 얼마나 우리의 삶과 역사가 묻어있는 문화의 발현형태인지 고민을 하는 경우도 많아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것이라고 발명된 상징을 소모할 뿐이다.

굳이 호미 바바가 논하는 문화의 제3지대, 협상의 과정 등을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 형성하고 있는 문화가 얼마나 많은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변화를 겪고 있는지, 또한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창조해가고 있는지,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와 다른 존재들의 문화를 확인해가고 있는지 보고 있다.

인구의 이동이 자본의 흐름만큼이나 활발하고 정보와 상징의 교류가 광케이블의 속도를 타고 진행되는 상황에서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운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참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