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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고단수 차별. 성공하면 된다.


별 흥미롭지 않은 기사가 올랐다. 그냥 대충 훑어보다가 댓글을 본다. 그리고 추천의 글 갯수를 보고 또 한번 이죽거려본다.

http://news.nate.com/view/20100730n08800?mid=n0305

상류층 여성들이 노닥거리기나하면서 성공한냥 하는 것을 비판한다. 뭐 토를 달 생각은 전혀없다. 하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논리, 이 무한경쟁의 체제에서 승리한 사람만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논리에 눈살을 찌푸려보다 댓글을 본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란다. 여성이 남성과 동일선상에서의 경쟁에서 승리할때만이 인정받을 수 있고, 그것이 여권의 신장이다..라는 논리는 이곳에서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된다.

Model Minority.

7-80 년대를 지나오면서 극한의 차별을 이겨낸 미국의 아시안 이민자들이 서서히 주류사회에 등장하고, 성공의 사례로 소개되어지면서 Minority 의 Model이 되어간다. 열심히 노력하면 백인들에게 차별당하지 않고 당당한 미국시민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논리가 유포된다.

그것은 거꾸로, 슬럼에서 슬럼독이 되어 살아가는 흑인들과 불법으로 빌붙어 허드렛일이나 하며 흑인 흉내나 내는 히스패닉계열 이민자, 그리고 성공하지 못하여 자기네 구역만을 어슬렁거리는 도태된 아시안 이민들은 노력하지 못하여 이 경쟁의 시장 속에서 차별받아 마땅한 존재가 된다.

그것을 지적하여 각종 인문사회과학에서 강도높게 비판해온 논리가 Model Minority에 대한 논의이다.

군대를 가서라도, 남자들과 힘을 겨뤄서라도 열심히 하면 이겨낼 수 있고, 그래서 성공하면 그것이 여성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는 논리는 그동안 꾸준히 마치 대단히 여성평등의 선구자인냥 목소리를 높여온 보수진영 여성집단의 일관된 논리였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아주 맛깔스럽게 경쟁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소화된다.

성공한 자를 모델화 하여 성공해서 대접받고 그렇지 않으면 감수하라는 논리는, 결국 자본주의 계급을 가르는 선이 다양한 소수자의 존재 역시 나누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초기 자본주의는 기회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진일보된 자본주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고명하신 기회의 평등이다. 그래서 그 기회를 잡아 성공하면 자본주의에서의 왕관인 계급의 이름을 바꿔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평등하게 우월한 지위를 만끽한다. 런웨이에서 당당하게 걷는 모델이 되어 우러러보는 관객을 바라본다.

자본주의의 경쟁에서 단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것은 출발선이다.
식민지 경영이후의 자유무역의 논리에서도 출발선은 지적되지 않았고,
구조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공된 제도적 자유와 평등에서도 출발선의 문제는 지적되지 못했다.

50미터 앞에서 게다가 뒤에다 대형 선풍기를 설치하고 뒷바람을 맞으며 달려가는 사람들이
저 뒤 출발선에서서 맞바람을 맞으며 뛰어가는 사람에게
졸라게 뛰어서 먼저들어가면 평등한거잖아.

라는 되먹지 못한 소리를

나만 평등하다고 느끼면 된다고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고상하게 전달한다.

이럴때면 절절해지는 이미지를 또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