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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꼭 핀란드랑 경쟁 해야겠니?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찮게 어떤 책 제목을 보게 되었다.

"핀란드 경쟁력 100"

원제가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 글을 쓴 핀란드인도.. 그 글을 번역한 사람도 과연 거기에 경쟁력을 삽입함으로써 전달되는 메세지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을지 궁금해진다.

아마 김영삼정권시절 언젠가 부터 주로 사용된 것으로 기억되는 저 경쟁력이라는 단어는 십수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에게 참 잘먹히는 언어 상품인가부다.
70년대의 잘살아보세와
80년대의 희극적인 정의사회구현을 넘어
90년대 국가경쟁력을 통한 세계화
그 장엄한 사회적 미션은 여전히 유효한지 아직도 각계에서 자본주의 유토피아의 삼강오륜인 마냥 사용한다.

그래서 이 피비린내 나는 자본주의 경쟁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먹어치워버리는 식신스러운 식성으로 세상의 모든 원리를 모델화하여 국가미션화 한다.

핀란드 경쟁력 100이라는 책의 제목에는 그런 식성이 담겨있다.
책을 전혀 읽어보지 않고 조금의 설명만 보고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저자와 번역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휘 선택만으로도 그 사람이 이 사회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명쾌하다. 경쟁력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식으로 의미화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이해하는 한 그것의 메세지는 명료해진다.
어떻게 하면 이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경쟁력을 키워서, 여전히.. 우리의 꿈과 희망인, 세계 1위를 향해 갈것인가.

참을 수 없는 "존재감"의 가벼움을 겪어온 사람들에게는 미국에서 거액에 당첨된 복권을 판매한 가게가 한인 교포 소유의 가게라는 것까지 신문기사에 내야하고, 월드컵에서 오프사이드를 잡아낸 선심이 한국인이었다는 것을 보도해야하는.. 존재감 찾기의 절박함이 있어서 경쟁력과 세계1위가 그토록 소중한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그 어떤 상황에도 국가경쟁력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국민적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핀란드에 관한 이 책이 이렇게 포장이 되어 광고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 책의 소개에서 간단히 설명하는 핀란드라는 나라는 경쟁력이라는 화두에는 걸맞지 않은 공공선과 분배, 그리고 조화로운 삶에 대한 가치가 강한 나라이다.

달리 말해,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통해 "치고 나가고 자빠트려서 생존하는" (널빤지 하나를 향해 헤엄쳐가는 수십명의 난파선원들의 머리속에 존재하는 그런 생존. 그런 상황에서 공존은 사실 목숨을 건 오지랖이다) 종류의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하여 그 나라를 평가하고 모델화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종류의 사고체계와 국가적 이념을 갖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제목만으로 판단한 그 책의 논리는 핀란드처럼 공존의 가치를 살리면 우리도 경쟁력이 강해져서 이 지구화된 자본의 경쟁 체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라는 논리로 결론지어질 것이라 예상해본다. 언뜻 꽤 진보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현재 한국 정부의 시대착오적 성장주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경쟁력이라는 것에 대한 강조는 근본적인 공존이나 몰인간적인 시장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외면하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실제로 그 책의 소개에는 핀란드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각종 항목들이 나열되어있다. 세계 1위는 좋은것이니까 그것을 성취한 나라는 좋은것이고, 그래서 그 나라의 것들은 우리의 모델이 된다는 매우 단순한 논리의 암시이다. 그 1위의 항목들이 우리에게 참 필요한 가치의 1위인 것들도 있어 아.. 이렇게 하면 우리도 좋은 나라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려고 그 1위 항목들을 나열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우리에게 1위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화된 기호이기 때문이다. 1위를 성취한 그 항목의 가치가 아닌, 1위라는 기호적 의미 즉 "경쟁력" 확보라는 메세지에 더 충실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떤 블로거들은 (만약 이 어휘선택이 작가가 한 것이라면 그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이 책의 소개를 올리면서 "우리 국가 모델"이라는 말을 첨가하셨다. 국가 모델이라는 말은 나치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북한의 우리체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국가 모델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용되며 우리의 갈 길처럼 자연스럽게 제시될 수 있는 일상의 전체주의성에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

다시 이야기 하지만 이는 매우 불공평한 평가이다.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미리 제단하고 그래서 비판하는 것은 말이다.

만약 그러한 결론이 아니라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경우 책 제목을 짓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또 비판을 받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