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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바라는 것이 무리인 줄은 알고 있었다.
앞의 글들에서 썼듯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는 예상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하리만큼 자명한 그들의 물적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지켜지지 못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현실에 대해 또 좌절한다.

사람이 죽었다.
그 이후에는 책임 공방만이 남아있다. 공방이라는 말이 마치 잘잘못을 따지는 것으로 비추어지는 것 조차 민망해지는 사람 목숨과 관련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라는 사람들은 억지로 떼쓰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덮으려 한다. 그리고 철거민이네 아니네를 갖고 보도를 한다.

그들에게서 어디에도 생명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사실. 그들이 생명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가당착이었을 것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비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 스스로 인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개발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물" 에 대한 예의만 갖고 있을 뿐이다. 모든것이 금전적인 교환가치로만 환원된 자본주의에서

어떤 이유로든 죽어간 사람들은 그저 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 따름이다.

재로 환원된 "물" 로서의 인간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체제에 대한 저항 그 이상의 선택은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