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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다름의 의미 좌경의 의미

우리들은 좌경학생 좌장면 먹고 좌전거 탄다 걸을때는 왼쪽으로 화장실 노크도 왼손으로 남가좌동 북가좌동 좌석버스 타고가좌...

를 부르던 그 구좌파스러움을 논하면서 좌의 의미를 짚는 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듯 하다.

많은 죄송스러움이 남지만, 계급이라는 구조도, 정신이라는 이념체계도 메이져와 마이너의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권력 구조의 한 자락으로 남았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듯 하다.

물론 여전히 그 부인의 정치는 남아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또한 강력히 인정하지만, 그 역시 기존의 "계급정신" 이 존재할 수 있었던 구조의 개념으로 본다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의미의 인정이리라 생각해본다.

지금의 좌경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전히 권력의 구조 속에서 좌의 의미는 템플릿 처럼 정해져있는 마당에 굳이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하냐는 반문이 여전히 유의미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구조에 대한 반정립을 존립의 근거로 삼는 다는 것은 지극히 패배적이고 그래서 무의미 하다는 것에 동의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토론중에 나온 한 마디가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퀴어를 지향한다.
그 이상함과 그 다름에 대한 근본적 지향때문에 우리가 공포에 떨고 있는 "유사하게 만들기"의 강력한 힘, 즉 시장과 권력으로 부터 분출되는 강력한 힘에 대해 지속적으로 상쇄 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모던과 포스트 모던을 논하면서 구조의 존재 유무에 집착을 하게 되면, 필연적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소위말하는 안티테제의 지향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무시가 스스로에게서 발견되는 시간이다.

권력의 전복이었는지, 유사하게 만드는 힘에 대한 저항인지. 그 과정에서의 권력, 계급, 구조의 의미를 파악한 것이 아니라, 그저 축에 대한 저항만을 상정하면서 개별 지향들의 방향이나 성격을 전혀 무시한 것은 아닌지.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참 폭력적인 형태로 학문화 되고 테제화 되었던 것은 아닌지. 그냥. 또 곱씹어 본다.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을 보며, 부르디외의 문화적 취향의 획일성을 보며 혼돈을 느끼는 것은..

이들이 염세를 하자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를 방어해 봐야겠다는 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비관성이 담겨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찾아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는 어쩌면 개인에게 달려있는 문제일텐데, 축 지향적이고 거시 지향적인 바탕 속에서 쉽게 염세적 비관주의와 모험적 낙관주의가 기형적으로 공존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된다.

이 속에서 니체나 마르쿠제가 예술을 해방의 단초로 제시했다는 것은 굉장히 사변적으로 묻혀 버리다.

예술이 왜 단초일까. 왜 예술의 기술 복제에 대해 그토록 그들이 절규했을까.

결국 다름에 대한 근본적 이해 부족에 대한 절규가 아니었을까.

잠시 한가한 틈을 타서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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