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빈민. 벽화. 공공미술.

유목 2010/11/05 03:15

페이스 북은 참 무심한 미디어이다. 아마도 미국 사람들의 인간 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 하다. 별 희한한 이름인데도 대번 이름을 외우고, 밝게 웃으며 인사도 하고, 누가봐도 이쁘지 않은 가방을 I love your bag 이라는 말과 함께 칭찬하지만..이내 곧 다른 사람으로 관심을 돌리고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결국은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시 만나는 일은 거의 없는 인간 관계 말이다.

페이스 북은 그런 인간관계를 아주 디지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친구를 맺었던 한 그룹이 자신들의 페이지에 "보든 말든 오시든 마시든" 이라는 심정으로 올렸을 한 이벤트 소식을 하마터면 놓칠뻔 했다. Chicago Public Art Group (http://www.cpag.net/home/  or  Facebook) 에서 일반 사람들에게 시카고 남부 Hyde Park 지역의 벽화들을 소개하는 이벤트를 연다는 소식이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에 몇번을 망설이다가, 망설임과 게으름은 자극에 대한 방탄조끼라는 생각으로 리안양까지 들쳐업고 가족 나늘이로 삼아 이벤트에 따라나섰다. (사실 이부분이 얼핏 별거 아닌것으로 느낄지 모르겠지만, 생면부지의 미국사람만 잔뜩 모여 있는 어떤 이벤트에 한 가족으로서 참여한다는 것은 "문화적용기" 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곳에 살면서 지속적으로 느끼게 된다. 시선. 어색함.)

Hyde Park 지역은 시카고 남부 미시건 호수를 따라 형성되었던 거대한 공업지역과 물류항을 배경으로 하는 산업지역이었고, 철저히 산업지역은 슬럼화되는 자본주의 도시의 패턴에 따라 지독한 슬럼화의 늪에서 수십년을 보내다가, 다양한 지역 "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사람 사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런 공간이다. 이런 사업속에서 다양한 운동가들이 활동했고, 오바마도 그 중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한 지역이기도 하다. 주변에 University of Chicago 와 같이 "인문학"에 철저히 올인 되어있는 대학 덕분에 다양한 인문적 프로젝트들이 실험되고 있고, 그 덕분에 좋은 서점등 동네 가게들과 미술관, 지역 공동체 시설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Chicago Public Art Group 은 1971년에 시카고 벽화 그룹 (Mural Group) 이라는 형태로 시작되어 산업의 도시에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들을 진행했고, 지역 공동체와 연계하여 다양한 예술 교육, 교류 사업을 진행한 Non-Profit 단체이다. 지난 10월 23일엔 그들이 다양한 지역 아티스트들과 연계하여 작업한 벽화들에 대한 "가이드 투어" 를 진행한 것이다.

Jon Pounds 라는 사람의 가이드로 진행된 이 투어에는 우리를 포함하여 20명 남짓이 참여했다. 벽화들이 한데 모여있는게 아니라, 시카고 전철선로 밑으로 도로를 낸 지하차도들에 띄엄띄엄 그려져있는 관계로 많은 이동을 해야했고, 따라서 그 과정중 자연스럽게 몇몇은 집으로 돌아가다 보니, 마지막에는 10여명만 남아 오붓하게 마무리되었다.

       Jon Pounds 아저씨와 사진을 열심히 찍던 참가자


가이드는 다른 미술 투어와는 사뭇 다른 설명으로 이루어졌다. 작품의 의도, 테크닉한 면, 해석.. 등등으로 이루어지는 일반적 미술작품의 설명은 물론이거니와, 벽을 이루고 있는 콘크리트의 특성, 그것에 화학적 영향을 받는 색감, 보존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적인 것과 같이 "도시 벽화" 라는 특수한 형태의 "공공 미술"이 겪어왔고, 극복해야하고, 대안화할 수 있는 설명들을 아주 자세하게 제공하고 있었다.

사실 너무 전문적인 말들을 (그놈의 화학용어들이란) 이곳에서 재현하긴 쉽지 않을 것 같고, 다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순한 지속적 repainting 이 아니라, 디지털을 이용한 대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벽화가 치명적으로 갖고 있는 화학 반응에 대한 대안,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 또한 각종 사람들의 덧칠. 낙서. 이런 것들이 물론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 시간을 반영하고 사람을 반영하는 좋은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정적인 자원을 갖고 있는 사람들) 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게 보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안은 바로 두꺼운 철판에 디지털 프린트를 하여 강력하게 리벳으로 연결한 철판 디지털 벽화라는 것이었고, 이미 세군데 설치가 되어있었다. 물론 벽화의 질감과 풍화의 맛은 그 여느 Digital Product 와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람냄새 없는 공공미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문제이겠지만, 도시 벽화도 엄연한 미술 작품으로 예술과 사회 맥락을 품고 있는 기록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에 자연스런 전제를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그걸 단지 사진으로 남겨놓고, 리프린트를 통해 액자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복원하여 여전히 "공공" 의 미술로 자리하는 기능성까지도 회복시켜 놓은 것이다.

공공미술은 바로 이 두가지, 예술과 기능의 두가지가 균형이 맞았을때 비로소 커뮤니티안에서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어쩌면 평범한 논리의 전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공공미술은 "빈민지역"과 아이러니한 공존 관계를 형성한다. 시카고 북부와 같이 상업적으로 활발하고 부유한 지역들의 지하차도는 각종 광고로 도배가 되어있다시피하다. 물론 그곳에도 몇몇의 것들은 찾아볼 수 있지만, 대체로 상업적인 게시물들이 가득한게 사실이다. 이는 그 지역의 구매력을 반영한다.
따라서 구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남부지역과 같은 빈민지역의 벽은 상업화로 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자연스레 공공의 영역에게 그 공간을 활용할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빈민 지역은 (지난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가난한 지역- 즉 세금을 덜 내는 지역은 도로 등 공공 시설에 대한 관리가 거의 안이루어진다) 벽 하나도 깨끗하게 관리되기가 힘들어, 일단의 사람들의 자발적 노력이 아니면 좀체로 깨끗해질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기때문에, 벽의 빈 공간은 손길을 필요로하기까지 한 것이다.


                                              벽화를 가리고 있던 신문자판기 치워버리기. 뭐 새가슴인건지 그냥 바로 옆 벽에 놓더이다.


설명이 구구절절 길었다. 다만 이 구구절절함은 공공성에 대한 것이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공간에서 앞으로 공공성에 기반한 여러가지 활동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노파심 정도로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다음 편에는 몇가지 벽화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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