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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

여행과 체력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달에도 오클라호마에 일주일간 다녀왔으나, 한참을 살던 곳에 찾아가는, 그것도 매일 같이 서너건의 미팅이 잡혀있는 일정을 여행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너무 관대하다.

아직도 여행이 남겨놓은 입술의 하얀 구멍과 사포로 비벼 놓은 듯한 목구멍의 따끔함이 전혀 가시지 않은,
고작 여행에서 돌아온 두번째 날인 이상 무언가를 정리해 남기는 것은 무의미 하다.

(여행의 기록이 바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없는 편이다. 지금 당장의 정리와 나중에 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간극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에 대한 방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메트로폴리탄 옥상 정원에서 본 뉴욕. 카메라에 잡티가 생겼다. 내 힘으론 닦이지 않는다. 

다만 체력에 대한 충격을 기술할까한다. 
방랑벽, 역마살, 유목, 등등의 말을 흔하게 들어온 내게 여행의 체력은 별다른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아마도 별무계획으로 생각나면 휘리릭 떠나버리던 습성상 그런 걱정을 할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가장 중요하게는 별로 챙길거 없는 내 한몸만 챙기면 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보던 것도 각도가 달라지면 달리 보인다며, 구석구석 휘젓고 돌아다니는 내게 발의 통증은 그저 발끝의 통증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지난번 한국 가던길 이틀간 들렀던 도쿄에서 살짝 찾아온 여행체력의 공포가..이번에 현실로 다가왔다. 

나이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나이에 필요한 만큼의 운동량 부족이라는 게으름 때문도 나이 때문은 나이 때문인 것이다. 거기에 쉴새없이 확인해야 하는 한 분이 더 등장했으니 말이 필요없다. 

사실 일정에 무리가 있었다. 경제적 빠듯함은 여행일정의 빠듯함으로 나온다. 필라델피아의 친구를 만나러가는길, 참새가 방앗간은 들러줘야 한다는 심정으로 뉴욕에 들러 무박으로 앞뒤 하루씩을 통째로 돌아다니는 일정을 잡는 무리함은,

아마도 11달 되어가는 리안양에 대한 배려는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다녀왔다.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지난 시간 다녔던 길을 기억하고.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고.

그리고 기억속의 풍경들에 새로운 구성원을 얹어놓고 왔다.

세 사람의 코와 목은 즐겁지 않은 소리를 내며 돌아온 이튿날 시작을 망설이고 있다.
발에는 불이나서 물을 데울지경이다.
김치찌게가 입술에 닿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

이런저런 일이 정리되면, 곧 또 한번 떠나봐야겠다.

망각의 동물은 곧 또 여행을 준비하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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