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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성기업. 언론의 폭력. 대학교 다닐때, 아마도 정치과정론이라는 수업이었던 것 같다. 기말 페이퍼로 1994년의 지하철노조 파업당시 언론 보도에 대해서 썼던 기억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하철 노조 파업당시 신도림역 플랫폼 풍경을 담은 사진을 거론했었는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지옥철의 끝 신도림의 일상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한 시민의 절규하는 사진을 노조파업의 탓으로 돌리는 사진이었다. 그게 1994년. 어쩌면 그 당시보다, 노동유연성의 정도는 더 심해지고, 사회안전망도 훨씬 약해졌으며, 대기업중심의 자본구조는 전혀개선되지 않은 2011년. 한 작은 기업에서 일어난 파업에 대한 거대 언론들, 촌지로 연명하는 언론들, 대놓고 기업들 편에 서는 언론들, 그리고 그 언론들의 선정적 문구들을 대문에 척척 걸어주는 거대 포털 사이트.. 더보기
사형제의 고도전략 흉악한 범죄가 떠들석해질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재등장하는 사형제 존속론은 이제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얼마전 사형제가 합헌으로 겨우겨우 존속되는 과정을 거친 곳에서, 그 "겨우겨우" 존속되었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끼는 찬성론자들의 심리적 저항은 이해가능하다. 물론 인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포털 사이트 중심의 뉴스읽기가 점점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지금, 온라인 전문 미디어는 물론이고 주류 미디어 역시, 그리고 더 나아가 객관적 뉴스 생산자라고 "믿어주길 바라는" 기간 통신사인 연합통신까지 인터넷에서 손가락 빨리 돌리는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기사를 뿜어내고 있는 요즘. 오늘 연합뉴스의 "사형 가능성 있어" 라는 제목의 기사는 섬뜩하기만 하다. 단순하게 "가능성 있어" 라는 말을 객관화된.. 더보기
언론과 전쟁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조선일보를 보면 북한 첩보 신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치 많은 량의 북한관련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사실 조선일보의 대단함은 월간 조선을 통해 수많은 소설정보를 양산해온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보력의 승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뛰어난 소설들이 아주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게 양산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대단한 언론임을 새삼느끼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논문준비로 조선일보의 교육기사와 광고를 분석하고 있는데 역시 연구자들에게 실망시키지 않는 독특함을 선사하고 있다. 이걸감사해야하나) 상업언론의 전쟁유도의 역사는 19세기 미국으로 거슬러간다. (그 미국 말이다. 조선일보가.."선진 미국의 경우"...라는 부사구를 손끝에 달고 다니는 그 미국) 미서전쟁으로 알려져.. 더보기
타락한 포퓰리즘. 사형을 집행하자고?? 청와대에서 경찰로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홍보하여 용산참사를 무마하라는 지시를 내린것에서 알 수 있듯 기계의 외피만 남아버린 영혼없는 정권은 스스로 살길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원칙도 도덕도 감정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듯 하다. (솔직히 강호순 사건이 조작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 지경까지 갈까..때가 어느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접었지만, 그 정도의 의도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확신만큼은 있다. 정보가 이렇게 풍부한 세상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 사람들은 분노한다. 연쇄살인에 대하여.. 이는 어쩌면 당연한 감정이리라. 인간이하의 행동에 대한 공포와 분노는 당연지사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건이 있을때까지의 현대사회의 병리를 따지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