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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나이키를 둘러싼 난투극

예전에 흑인 동네 신발가게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정말 지독하게 슬럼인 동네여서, 그 신발가게 플라자를 제외하면 폐허와 같은 곳이었다.

미국의 신발가게는 일부 브랜드 샵 (아주 극히 일부, 예를들면 나이키는 대도시 다운타운에만 '나이키타운'을 운영하는 정도)을 제외하면, 소위 멀티샵으로 각 브랜드가 일정량 들어와있다.

이런 곳에 유독 나이키만은 모든 종류의 신발을 정해진 갯수에 딱 맞춰서 공급한다. 가게별로도 등급이 있는데, 그 등급이 '나이키 에어포스 원' 을 일정기간 동안 몇켤레 받을 수 있느냐로 암묵적으로 정해진다.

이번 사단의 원인이 된 에어조던 시리즈는 그동안 수십가지의 변형된 형태로 나와서, 어떤 한 시리즈가 출시되면, 한동안 그 신발과 소위 "깔맞춤" 한 옷과 모자가 한꺼번에 팔려나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흑인에 있어서 깔맞춤의 문화사적 의미를 조사해 본 바는 없지만, 백인들이 폴로티셔츠에 카키바지를 입는 지루한 suburb 패션에 비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에어조던 시리즈 역시 각 사이즈별로 한정된 숫자만 나오며, 주로 토요일날 출시되는 이 신발을 사기위해 토요일 새벽부터 가게앞에 장사진을 친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오해는 모든 사람이 심지어는 거지도 차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장된 표현은 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라는 점에 대한 역설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차 없으면 아무것도 하기 힘든 나라에, 차가 없는 흑인 젊은 남성들이 꽤나 있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차가 없으면, 신발을 사기 위해 시내 더 큰 매장까지 찾아갈 수도 없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동네 신발가게의 단골이 된다. 

나이키라는 회사는 수백억의 광고를 들여 스포츠 스타들을 우상화시켜나갔다. 특히 흑인들이 타겟이 되곤 하는데, 그중 대표적인게 마이클 조던이었다. 그의 이름을 상품화한 에어조던, 이 한정된 갯수의 상품은 갖고 못갖는 것의 구분지음 (distinction) 의 대상이 된다. 즉 사회가 있는자와 없는자, 학벌이 좋은자와 좋지 않은자 등등의 상징화된 자본으로 구분되듯, 이 에어조던은 흑인들 끼리의 구분지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는 요근래 노스페이스를 둘러싼 한국 학교의 모습에서도 나타나는듯 하다) 

대단한 사회 구조적 구분지음은 아니지만, 사회로부터 배제되어있는 자들이 사회의 구분지음의 관습을 다른 형태로 복제해내어 자신들의 구분 대상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 대상 설정을 조장하는 것이 바로 나이키의 광고이며, 나이키의 한정판매 및 가게별 차등화를 통한 공급제한인 것이다. 

종종 쟤네는 대체 왜 저렇게 깔맞춤에 집착하는거야? 왜 돈도 없으면서 저 비싼 신발을?? (실제로 우리가게에 일하던 흑인 친구들은 신발 선점의 목적도 다분히 갖고 있었고, 대부분이 주급을 온전히 가져가지 못했다. 가져간 신발값 까느라..) 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그러다가 생각해본다. 차가 없는 미국 슬럼. 갈 수 있는 곳이란 몇몇 식품점, 상점 이 전부인 곳. 거리에는 마리화나를 팔고, 1센트 동전과 빈 병을 줍는 노인들이 어슬렁 거린다.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운동선수 흉내를 내고, 힙합을 부르며 몸을 흔든다. 
그들에게 이 단조로움 속에서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낼 만한 한정적 재화라는 "꺼리" 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구분짓는 아주 종속적인 방법을 택한다. 

누구의 잘못인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짝퉁은 중딩때 내 짝이 들고 있던 "르 까스" 가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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