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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SNS 라는 우물.

communication technologies 에 대한 논의들을 보면, 어떤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사회적인 영향을 발휘할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그것에 대해서도 과대평가한다. 구텐베르크가 유럽지형을 바꿨다는 이야기는 일면 맞는 이야기이겠지만, 이미 그것이 퍼져나갈 만한 사회의 물적, 문화적 기반이 만들어져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인쇄술 하나가 바꾼것은 아니었다. 직지심경이 한반도를 근대사회로 이끌지 않은 것 (못한 게 아니다..그쪽 방향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지금 SNS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열광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생각하기에) 이 무시무시한 것들이 인간을 계몽시키고, 사회의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위력에 덜덜 떨면서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역사의 장기적 흐름에서는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단기적으로 과대평가를 하는 것은 정세적, 사회적 오판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많다. 문제는 기술에 대한 과대평가를 넘어 이용자들의 역량에 대한 과대평가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기술의 우물에서 열광적으로 유통되는 변화의 내용들로 세상을 제단해버리면 마음 속에 기술의 독재를 용인하게 할 수도 있다. 

자기가 읽을 수 있는 글자로 값싸게 인쇄되어 나오는 성경책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광하며 급진적 변화를 꿈꾸던 사람들도 200여년동안 구교의 탄압속에서 죽어갔다. 어쩌면, 그 모국어 성경책을 읽은 사람들을 과대평가한 결과일 수도 있다. 현대의 역사가 그만큼 호흡이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새로운 테크놀러지가 사회를 통째로 흔들어 놓을만한 힘을 단기적으로 발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기술 밖의 세상도 여전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맥루한이 미디어를 과대평가했다는 것은 오해이다. 
                                              맥루한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