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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

삶과 여행

사는게 여행이었으면 좋겠어. 
들어보기도 하고 내뱉어보기도 한 말.

응. 나름 사는게 여행처럼 살고 있어. 어쨋든 내게 익숙한 공간에서 살지는 않으니까.
이런 자가당착. 사는게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면서 익숙한 공간에 살지 않는 것을 사는게 여행인 근거로 삼고 있다.
익숙하게 살던 공간은 여전히 백스테이지가 된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사는게 여행처럼 살고있어. 여행을 아주 자주 다니고 가까운데도 종종 놀러다니거든.
아니아니 그 여행은 여전히 이벤트이다.


내 사진 폴더를 열어보았다. 

나는 사는게 여행이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여행은 아니었다는 것에 결론이 내려진다. 그렇다고 딱히 유목도 아니다.
사진 폴더에서 내가 살던 동네에서의 피사체와 내가 놀러간 동네에서의 피사체는 상당히 다른 패턴과 주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브루클린다리. 100년이 넘게 비슷한 모냥새로 자리하고있어 비슷한 사진들이 즐비하다. (그래도 갈때마다 다르다규...)

나에게 있어서도 삶과 여행은 상당히 분리되어있었다. 삶이 약간 덜 정리된 여행같은 측면이 있긴하지만, 그렇다고 철저하게 둘러봄과 경험을 흡수하기에는 상당히 피곤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 핑계대본다.

여행을 가면, 이런저런 사진을 찍다가도 관광엽서 샷을 하나씩 남긴다. 
등뒤로 구경을 했다는 둥, 달력을 스캔하고 왔다는 둥 관광에 대한 빈정거림이 넘쳐나도, 그래도 인증은 인증이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각도에는 이유가 있기때문이다. (造角有理 - 모든 각도에는 이유가 있다. 마오쩌뚱의 모든 저항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이렇게 써도 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 삶의 풍경은 관광엽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십번을 지나치고 지나친 무언가에 다른 빛이 나고, 다른 조합이 형성되어 만들어지는 다른 풍경을 담을 따름이다. 여행중에는 그 다른 것이 일회성이기 때문에 다름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그게 그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어떤 한 여행지를 지배했던 날씨에 따라 기억의 색이 정해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리라. 내게 몬트리올은 짙은 회색이었고, 베이징은 누런색이었던, 그리고 통영의 앞바다는 수증기 자욱한 입김색이었던 것 처럼 말이다. 

여행은 그렇게 일회성의 사진과 기억을 남겨놓는다. 매일매일이 존재하는 일상의 삶에서 지속적 일회성을 담아내며 살아가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애초부터 사는게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범인에게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독한 실천가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적부터 유독 비오는날 집에 짱박혀 밖에 걸어다니는 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몇년전 여름. 부천의 익숙한 집아래 보이던 비오는 날의 풍경. 

그러다 생각해본다. 
매일매일 보던 같은 풍경에서, 다른 조합이 더해지고, 다른 빛이 발산하고, 다른 마음의 다른 눈으로 바라보며 담아가는 일상의 삶이. 사실은 더 여행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의 여행은 스스로 아니라고 바둥바둥 거리지만, 그 여느 달력 스캔과 그저 조금 다를 뿐인 관광은 아닌가. 

일상에서 분리된 여행을 꿈꾸며 매일의 삶을 피곤하게 느끼는 행위를 중단해야되겠다. 이 역시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노력없이 얻어지는건 사실 아쉽게도... 범인들에겐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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