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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게

공론장. Context. 만져짐.

동네 가게들을 탐험하고자 하는데 있어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첫째는 대안 소비 혹은 이념 소비의 가능성, 둘째는 다양성 확보의 방법, 그리고 셋째는 공론장 형성의 가능성이다. 

이 세가지 모두 매우 이론적이며, 철학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실용적인 측면에서 접근되고 있다. 

동네가게에서 공론장을 떠올리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스럽게 하버마스의 18세기 서유럽에서의 공론장 형성에 관한 논의에서 근거할 것이다. 영국에서의 커피하우스에 모여들던 부르조아 지식인들, 그리고 프랑스의 살롱에서 술을 나누던 계몽주의의 산물들. 이들이 형성한 부르주아 공론장은, 이후에 후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오며, 더욱 공고해진 자본주의의 성채를 망연자실 바라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식인들에게 꽤나 로망처럼 받아들여지는 대안적 상황인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상황. 그 속에서 공유되는 지식. 대안의 소통. 그리고 실천 이라는 매우 이상적인 상태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공론장 이론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바람에 이 이론은 곳곳에서 난도질 되기도 한다. 또한 잔인하리만큼 단순화 되기도 해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계급적, 정치적 의미는 또다시 퇴색되어 그람시의 헤게모니론과 함께 하나의 만물상 이론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중 아마도 가장 빈번하게 이 만물상을 이용하는 쪽이 흔히 New media studies 라고 불리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분야가 아닐까 싶다. 

인터넷은 그 연결의 영역이 상상을 초월하는 만큼, 이론의 적용에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유연한 도구가 되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론장 이론의 인터넷에의 적용은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또한 상당히 심도 깊게 진행되었으며, 많은 부분 수긍할 수 있을 만큼의 다양한 이론과 검증이 진행되어왔다. 

물론 이 글에서 나는 굳이 이런저런 논문을 들먹이면서 (이미 재미없어져버린..) 글을 재미없게 만들 생각은 없다. 

동네가게를 얘기하면서 커피숍을 빼고 얘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이전에도 잠깐 주절거린적이 있다. 그만큼 커피숍은 지금 현재 대안적인 소비의 공간의 가장 흔한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최소한 미국에서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한 커피숍들에 앉아있자면, 다양성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간단하게 되지 않으니 만큼의 다채로운 취향의 사람들이 앉아있다... 

근데 그냥 앉아 있다. 
앉아서. 노트북을 들여다 본다. 앉아서. 아이폰을 조물락 거린다. 앉아서 책을 본다. 

각 개인이 원자화되어있는 현대산업사회에서, 커피숍이 공론장의 가능한 공간이 되리라는 것은, 최소한 육안상으로는 불가능해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인터넷 - 우리를 무수하게 연결시켜주는 각종 메신져와 Social Network 들, 그리고 각 게시판들이 유일한 가능공간으로 되는 것인가? 

아직 어떠한 이론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지만, 나는 아직도 공론장의 진정한 가능성을 Physical touch 라는 좀 이상한 말에서 찾고싶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기하급수적" 네트워크의 역량은 공론장의 파괴력을 최적화 시켜줄수 있으리나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 공론장이 진정한 "론" 의 장으로서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냐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남녀가 연애들 할때, 메신져가 최악이고 그 다음이 전화고.. 만나서 싸우는게 낫다고.. 뭐 나의 경험상 얘기를 한다.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데에는 필히 맥락 (context)이 개입을 한다. 그 순간 맥락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동안 보아온 한 사람의 표정과, 말투와, 제스쳐가 쌓아온 또 하나의 맥락은 의사 소통을 합리화시키는 전제가 된다. 

인터넷에서의 논쟁이 오프라인에서의 논쟁보다 더 강도가 센 이유에 대해서 익명성이다 아니면 당장 얻어맞을 일 없으니 괜찮다는 심리적 기제이다.. 등등으로 얘기하고..어느정도 동의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sender 와 receiver 사이의 맥락적 이해가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속에서 공론장이라 함은 사실 어쩌면 propaganda 에 더 가까운 형태가 공론장의 모습으로 곡해되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소통이 합리화되지 못했다는 것의 방증이다. 또한 그런 소통의 왜곡은 맥락적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사실상 Mass communication 에 가까운 일방향적 정보 유통에서 비롯된다.  

공론장 이론을 손쉽게 가져다 쓰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공론장 이론을 손쉽게 거시적 맥락에 적용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어떤 거시적 정치 흐름에서 나타나는 대중들의 움직임을 공론장으로 해석함으로써, 증명되었다고 말하곤 하는데, 과연 공론장 이론이라는 것이 전체주의 하에서 의사소통의 말살이라는 처참한 상황을 반추하고 이것을 방지하는 대응책이었다는 "이론의 역사적 맥락" 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냥 2-3차 문헌에서 주워들은 공론장 이론의 이론적 외피만 가져다 적용시킨 것은 아닌지. 

또 재미없어졌지만, (그리고 원래 재미없었지만) 결국 요점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공론장 형성의 가능성으로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여전히 소규모의 Physical 한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현실 공간에서의 토론과 논의, 그리고 실천이 거시 권력의 의사소통 왜곡을 제어해낼 수 있다는, 그리고 그럼으로써 인간이 종 (Species) 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돌아가 얘기하면, 

공론장의 희망은 "동네" 에 있다. 

하지만 그냥 앉아 있는 커피숍은. 아직 희망적이지않다. 요걸 어떻게 바꿔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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