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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글로벌 에티켓.


뉴스를 보다보니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는 것이 글로벌 에티켓인가" 하는 기사가 있다. 우선, 그 기사에 전문가 소스로 가져온 내용에서 그 전문가가 "G20 글로벌에티켓운동연합" 이라는 바른생활실천뭐뭐뭐 와 다를게 하나도 없는, G20 와 도대체 그게 왜 상관이 있는지 모를, 이름을 달고 활동한다는 점에서 일단 실소 한방 날려본다.
그리고 뭐든 글로벌만 붙이면 부담감을 팍팍 느끼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범 국가적 세계화 집착증에 대해서는 경멸을 한방 날려본다.
같이 날려주실분은 http://news.nate.com/view/20101028n26475?mid=p0403&isq=3049

이죽이죽거리는 글에서 딱히 한가지가 거슬리겠냐마는, 그 중에서도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껀" 이 에티켓이냐 아니냐는 근본없는 논의 자체가 어이가 없어 끄적여본다.

얼마전 여중생이랑 할머니가 지하철에서 스트릿파이팅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할머니가 일방적으로 강한 에너지로 제압했다는 후속 기사를 보고

그 할머니 장사네..

하는 생각만 하고 관심을 접었던 이유는, 그 둘에 대한 어이없음이라기 보다는
소위 말하는 역사사회적 맥락을 무시한채 제도의 사회적 합의만을 설정하려고 하는 인조인간적인 기형적 근대사회에 대한 환멸때문이었던 것 같다.

노인들에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는 규범적 제도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바탕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 전통 문화도 아니고, 글로벌 에티켓도 아니고, 원래 그래야하는 것도 아니다.

그 문제를 생각해야하는 바탕에는 과연 인간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을까 라는 점이다.


허구헌날 홍익인간을 외우고 단한번도 외국을 침략한적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별 개가 풀뜯어다 여물쒀서 소먹일 소리나 가르쳐온 이 찬란한 글로벌 현대 국가에 과연 인간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부터 시작되어야하지 않을까.
신문에서 얘기하길, 유럽에서는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내가 힘빠진 노인네냐고 무시하는 결례가 될 수 도 있다..는 말을 하며 유럽에선 이렇다. 어디에선 이렇다하고 "우리식" 으로 결정지어 놓는다.

하지만 그 문제는 노인의 공경, 무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중, 아니면 기계화된 관계의 차이가 아닐까싶다.

다시 여중생과 장사 할머니로 돌아가면, 과연 그 할머니는 과연 지난 시간 인간을 존중할 시간이 있었을까? 아니 시간 탓을 하기 전에 존중할 것을 요구 받거나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환경에 있었나?
물론 많은 사람들이 또 개인의 차를 얘기하면서 그래도 나이쓰 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변할 것이지만,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문제는 너네지 난 아니니까 너네나 좀 정신차려" 라는 미국식 "self-reliance" 를 적용시킨다면 결국은 끊임없이 답습될 문제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간 존중은 매직아이마냥 유난히도 두드러지게 어색했던 도덕교과서의 현실괴리감 만큼이나 사회적 합의 조차도 필요없는 글자만 존재하는 규범이었을뿐, 한번도 그것이 우선시 되어 적용된 적은 없던 것 같다.

전쟁의 폐허라는 이유로 잘살면 되는 것이고, 새벽종이 울리자 마자 총 들고 수도를 점거한 군인들이 무서워 잘 살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고, 또 새벽종도 울리기전에 총 들고 수도를 점거한 군바리들이 올림픽하면서 세계속의 한국이 얼마나 깨끗한지 나이쓰 한지 알려야 한다며 길거리 빈민대중들을 갈아엎는 것을 보며 아..깨끗해졌네를 따라외워야 했던..

우리의 시간 속에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은 예수믿으면 천당 간다는 말 만큼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모르겠다.

그리고 중학생.
먹고 살만해진 우리에게 세계화와 국가경쟁력을 들이대며 공포를 조장하던 시간에 태어나 IMF를 맞이하야 부모의 습관적 한숨을 이유식보다 더 자주 먹으며 성장하고, 일제고사를 통해 내앞엔 누가있고 내 뒤엔 누가 있는 것을 비상연락망 마냐 정확히 인지하며 자라온, 그리고 개인 미디어 앞에서 오타쿠 마냥 자위질 하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서 어떤 인간 존중을 기대할 수 있나 모르겠다.

그런 인간 존중의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자리를 양보하는게 에티켓이니 아니니 하는 형식적-규범적 껍데기의 논의는 그냥 지하철에 낚시 의자랑 목욕탕 의자를 구비하자라는 말보다 더 한심하다는 이야기다.


그 사람이 힘들지. 그 사람이 혹 기분 나쁘지 않을지. 그 사람이 혹시 다른 문제가 있지 않을지. 그 사람이 혹시 깜박 잠에 든건 아닐지...... 생각하기 전. 7자리중 한자리의 빈자리가, 마지막 남은 한자리 합격증을 받는 것 마냥 목표지향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글로벌에티켓은 운동협회를 만들어 똑같은 놈들을 먹여살린다


      아무 상관없는 짤방. 우리집 앞 전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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