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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죽거림

길바닥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


북쪽지방은 눈이 많이오고, 신속하게 치우기 위해 염화칼슘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한다. 사람들을 오늘도 일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화학약품을 뿌려서라도 기어이 사람들을 출근시키는 것이다. 물론 안치워주고 출근시키는 것보다는 낫지 싶다.

그로인해 도로는 쉽게 산화되어 갈라져내린다. 그래서 북쪽지방에는 계절이 두가지 있다고 한다. 눈내려서 소금살포하는 계절과 도로 공사하는 계절.

이제 시카고도 다가오는 혹독한 겨울이 오기전 마무리해야할 도로 공사들이 한창이다. 그렇지만 그 도로 공사로 부터 소외된 곳도 너무 많다.

미국에 살면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있다. (물론 좀만 발품팔면 알 수 있지만, 뭐 그닥 꼭 알아야 하는건 아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미국은 혹시 길하나 블럭마다 거둬들이는 세금을 합산해서 집행하는가? 이다. 왜냐하면, 좀 가난한 동네다 싶으면 어김없이 움푹 패인 엉망진창의 도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멋들어진 집이 늘어선 구역에 가면 아니나 다를까 짙은 흑회색의 아스팔트가 육상 트랙처럼 놓여있다.

그럴때마다 다시금 확인하는 생각이 있다.

'참 지독한 계급국가이다'

계급정치가 없는 나라에서 계급국가라는 정의는 불편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말에도 모순이 있다. 미국은 계급정치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정당 스스로가 계급적인 구분점이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계급에 따른 일관성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계급국가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또 다른 근거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상당히 숙명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 말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유럽식 계급 국가는 계급적 폭발력의 역사를 갖고 계급의 삶의 질에 대한 공론이 잘 형성되어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 때문에 계급국가로 분류되는데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하층 계급은 철저하게 값싸고 대량으로 유통되는 물건의 희생타이자, 자신들에 대한 고려가 상당히 적은 공공 서비스에 대한 결정에 그저 순응해 살아가는 무기력한 계급이기 때문에 큰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계급국가의 전형적 요소인, 자신의 계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은 분명히 갖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서 하층계급이라 함은 사회경제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인 금지어이자, 떨쳐내고 싶은 굴레가 된다. 그래서 모두가 그것을 떨쳐낼 수 있는 가장 고전적 방법이라 여기는 교육에의 올인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나라에서 우리 동네가 "가난하고 힘없다는 이유로" "도로가 엉망진창" 인 것은 격노의 대상이자, 포퓰리즘적인 언론의 좋은 표적이 되는 것이다. 왜 우리를 하층계급 취급을 하고 차별을 하냐는 항변은 단순한 항변을 넘어 폭발력있는 대중 분노로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짧고 기형적 자본주의 역사가 가져다준 선물이리라 생각한다. 폐허가 된 근대 대한민국의 모두 비슷한 선상의 출발점, 계급이 인위적으로 소멸된 상황, 그 이후 모두가 "개고생" 해서 일으킨 국가, 등등에 대한 고려가 모두의 몸에 체득된 상태에서, 그 중 일부만이 개고생의 결과로 부터 소외된다는 생각은 분노를 가져다 주고, 이는 계급적 역동성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근대화의 역군을 만들기 위해 행한 근대 대중교육의 힘도 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사고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점은 한국 사회의 계급적 역동성의 큰 힘이 된다. 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배양되었으니 말이다. 반면 미국의 하층계급은 교육적으로나 정보적으로 "방치"의 수준이라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계급적 역동성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인종 문제를 색깔의 문제로 만들어버린 자본과 권력의 오랜 기호학적 노력도 한 몫을 했을 것이며, 하층민을 위해선 기꺼이 가격을 낮추고 파리~한 두께의 플라스틱 모조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대량생산 대량유통 속에서 달램을 받은 사람들의 무기력함에 기인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지역적인 불균형,
그 속에서 존재하는 문화적 불균형은 이러한 구조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기도 한다. 오클라호마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굉장히 낯선 타자가 된다. god bless america 를 우웨웨웨 외치면서 별 똘아이 짓을 다 하더라도, 결국 그들의 나라는 뉴욕 워싱턴 시카고 LA 와 같은 곳에 사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사람들의 소식과 생산물로 가득 찬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지역 사람들은 '우리 동네가 어떤 영화에 나왔다'.. '우리 시에서 누가 태어났다가 두달만에 딴데로 이사갔지만 우리 출신이다' 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찾았다 생각하면서 그 지역의 계급적 불균형을 적극적으로 "희석" 시켜간다. 

이러한 곳에서 역동성은 참 기대하기 힘들다. 


길바닥에 대한 이야기가 또 주절거림으로 이어졌다. 주변이 완전 부자동네로 둘러싸인 곳에 살 돈도 없고, 비위도 없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 사는 우리에게 종종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아스팔트 웅덩이들을 바라보면서..
 
점점 숙명화의 길을 가고 있는 한국의 계급에 대해 걱정을 해보는 건. 
오지랖인가.. 




낙엽이 뒤덮은 거리. 길바닥의 계급정치를 잠시 덮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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